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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말들』, 류승연, 유유 (2020)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남에게 상자를 덮어씌울 때는 별생각이 없지만 내가 남들이 씌운 특정한 상자에 갇히고 나면 그제야 답답하고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점이다. (중략)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중받을 때 배려받는다고 느낀다면 나부터 타인을 그렇게 대하면 될 일이다. -23쪽 부모와 자식은 분리되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다. 분리되지 못한 대가를 오랜 시간 치른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됐다. 이제 내가 엄마다.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다. 아들과 내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 아들의 장애는 아들 인생의 장애이자 내 인생의 장애물, 우리 가족의 장벽이었다. 장애는 단지 장애일 뿐이라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25쪽 인간의 삶은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27쪽 사랑도 그렇고 배려도 .. 2020. 11. 22.
『홀로 서지 않기로 했다』, 조수희, 목수책방 (2019) 돈에 저당 잡힌 인생은 돈이 많건 적건 불안했다. (중략) 돈만 바라보며 버티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몸과 마음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9쪽지속가능한 삶은 자연을 착취하며 권력 맨 아래에 있는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을 지양한다. 대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사는 삶을 지향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제1의 가치로 두지 않는다. -12쪽천연자원을 낭비하고 제3세계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싫은 아저씨는 자신의 한계선을 재설정하기 위해 도시에서 영위할 수 있는 편한 삶을 포기하고 자급자족의 삶을 택했다. -35쪽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평화로운 식탁이었다. -39쪽고노하나패밀리는 공동체 내부에 고립되지 않고 외부사회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려 한다. 외부사회와.. 2020. 5. 19.
『습관의 말들』, 김은경, 유유 (2020) 먹고 나면 설거지는 즉시 하고, 행주는 사용하고 나면 빨아서 탈탈 털어 걸어 두고, 도마는 식초와 베이킹파우더로 한 번씩 소독해 잘 말려 주고, 청소년 시간을 정해 거르치 않으면 내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습관이 되면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하려고 마음 먹는 순간 미션이 된다. -23쪽 나갈 곳도 없지만 외출 준비를 하듯 씻고 차려입으면 일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27쪽 어떤 일에 대처하는 혹은 맞닥뜨리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도 습관처럼 반복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자세와 태도가 되풀이되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29쪽 가정교사 일로 돈을 벌며 남의 방 한구석이라도 매일 자신이 지내는 곳을 정갈하게 유지했고, -37쪽 어떤 사람의 정신세계를 가장 투명하.. 2020. 4. 27.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등, 민음사 (2020) ::곡성:: 여성들은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고, 가장 많은 피해를 당했고, 그러니까 한도 더 많이 맺혔을 것이라는 합리적 가정 아래 등장한 것이 처녀 귀신들의 한풀이 이야기입니다. 사또의 머리맡에 남자 귀신들이 나타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죽어 버리면 자신의 한을 풀 수는 없어요. -146쪽 일본인 노인과 무명은 이 영화 속에서 불길하고 수상한 느낌을 풍기는 존재입니다. 무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일단 그들을 의심하고 봅니다. 낯선 존재를 더 배려하고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안 좋은 일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극도로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공동체가 불길하다고 여기는 존재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2020. 4. 27.
『읽기의말들』, 박총, 유유 (2017) 그저 책을 읽다 말다 하며 뒹굴뒹굴해야 할 아이들도 왜 책을 읽느냐고 하면 재미있어서, 혹은 딱히 할 일이 없어서라고 하기보다 "책 읽으면 똑똑해지고 좋은 대학 가잖아요" 한다. 명분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쾌락으로서의 독서가 이토록 희귀하고도 사무치게 그리운 시대라니. -39쪽 독서만큼은 경쟁을 위한 질주가 멈추는 무목적의 행위가 되어야 할 터인데 '생존봇'이 된 우리는 책을 이용하고 버리는 몹쓸 짓을 반복한다. 더 무서운 것은, 책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묘하게 포개진다는 것이다. -39쪽 투입한 시간과 비용 대비 남는 장사인지 계산기 두드리는 독서를 해 봐야 시답잖은 것만 거둔다. 한편 읽어서 아무 이득도 남기지 않는 독서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남긴다. -41쪽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 2020. 4. 27.
『9번의 일』, 김혜진, 한겨레출판 (2020) 뭐가 겁이 나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젠가부터 생겨난 버릇이었다. -15쪽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순간은 그런 지난 시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만한 더없이 좋은 기회인지도 몰랐다. 그의 말 한마디가 자식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점점 주눅이 들고 있는 두 노인의 마음을 조금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24쪽 부장은 서류 두 장을 내밀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그가 회사의 퇴직 제안을 거절했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재교육에 성실히 참여할 것과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자 입을 다물어버렸다. -28쪽 그럼에도 자신이 왜 이토록 사소한 것에 마음을 쓰고 옹졸하게 굴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30쪽 그건 외부를.. 2020. 4. 23.
『창작과비평 2020 봄』, 창비 (2020) 소설 「서울의 바깥」, 박사랑, 창비 (2020) 나는 네, 하고 말했다. 네, 밖에는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다. -163쪽 23분까지만 쉬고 그다음엔 화장실에 가고 32분에 꺼내놓은 약 먹어. -165쪽 이 바닥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배운 건 높은 페이에는 지나친 피곤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나는 돈도 좋지만 나를 아끼고 싶었기에 아쉬워도 연결업체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중략) 그래, 돈 버는 게 나를 아끼는 거지 뭐. -166쪽 시험은 내 특기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실패가 더욱 두려웠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질 만한 일은 요령 좋게 피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하다 실패하는 건 정말 싫었다.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뭐랄까, 좀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준비는 .. 2020. 3. 30.
『웅크린 말들』, 이문영, 후마니타스 (2017) 누구든 존재한다는 이유로 신기해질 이유는 없었다. -12쪽 강원랜드에 한판 놀러 와선 겉만 보고 사북이 좋아졌다는 인간들이 있었다. 탄광이 한창일 때 관광노보리나 보고 간 놈들과 똑같았다. 보고 구경하는 마른 눈으로 살고 노동하는 사람의 습기를 알아챌 순 없었다. -14쪽 언어는 때로 선동이었고, 자주 기만이었다. 과거 그를 '산업 전사'라고 칭했던 언어는 현재의 그를 '노가다'라고 불렀다. 석탄 증산을 '애국'이라며 독려했던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감산과 폐광이 '합리화'라며 말을 바꿨다. 언어를 정의하는 권력은 그와 동료들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뒤바꾸며 언어를 감염시켰다. -14쪽 정치가 언어를 소처럼 부릴 때 그들은 소처럼 일만 하다 삭아 갔다. -28쪽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존재하.. 2020. 3. 28.
『나를 조금 바꾼다』, 나카가와 히데코, 마음산책 (2019) 자식에게 내 욕망을 투영해서 모든 걸 쏟아부우면 관계는 어그러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길 수 있도록 완전하게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29쪽 가족 사이에도 의식적인 거리 두기 연습이 필요하다. 내 자식이고, 내 남편이고, 내 아내니까 모든 사생활을 공유해야 하고, 어떤 벽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그게 지나치다 보니 늘 나보다 가족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시야에서 벗어나면 초조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37쪽 간혹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백이면 백 무슨 말을 한 건지 다시 묻게 된다. 또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많은 사람 의견에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이다. -47쪽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 2020.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