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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말들』, 류승연, 유유 (2020)

by 새 타작기 2020. 11. 22.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남에게 상자를 덮어씌울 때는 별생각이 없지만 내가 남들이 씌운 특정한 상자에 갇히고 나면 그제야 답답하고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점이다. (중략)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중받을 때 배려받는다고 느낀다면 나부터 타인을 그렇게 대하면 될 일이다. -23쪽
부모와 자식은 분리되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다. 분리되지 못한 대가를 오랜 시간 치른 후에야 그것을 알게 됐다. 이제 내가 엄마다. 아들이 발달장애인이다. 아들과 내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 아들의 장애는 아들 인생의 장애이자 내 인생의 장애물, 우리 가족의 장벽이었다. 장애는 단지 장애일 뿐이라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25쪽
인간의 삶은 비장애인으로 태어나 장애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27쪽
사랑도 그렇고 배려도 그렇다.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아들이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29쪽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은 퇴근하면서 전화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곤 했다. 온종일 쌍둥이 독박육아에 지친 아내를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내가 간다고. (중략) 곰돌이 푸가 그랬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고. 인생에서의 보석은 티파니 매장 앞이 아니라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 속에 박혀 있었다. 그 보석을 찾기로 마음먹고 끝내 발견해 내는 것, 그것이 자신을 배려하는 방법 중 하나임을 이제는 안다. -35쪽
"괜찮아, 널 친구로 인정해 줄게"라는 비장애인의 선심 (중략) 우리는 낯선 타인에게 친구라 하지 않는다. 생전 처음 보는 저 아저씨와 나는 친구가 아니다. 스쳐 지나는 타인이고 관계를 맺어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 자연스럽게 맺으면 된다. 반면에 장애인에겐 굳이 '우리가 친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 그 다름을 퇴색시키기 위해 친밀함을 나타내는 '친구'라는 단어까지 끌어 와 만든 말, 그게 장애우다. -41쪽
장애인을 배려하는 의도에서 사용되는 잘못된 표현이 또 있다. '장애'라는 말을 꺼내는 게 왠지 미안해서 '아프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중략) 장애는 아픈 게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에 아프다고 표현한다. 아픈 환자로 바라보는 마음엔 장애를 나아서 없애야 할 질병으로 바라보는 '장애 혐오'의 시각이 숨어 있다. 장애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판단하고 정상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이 녹아 있다. -43쪽
나는 어떤 인간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떠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스펙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온전한 알맹이로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개인일 수 있는가? -45쪽
괴롭고 슬픈 일은 여전히 일어난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괴로움과 나는 동의어가 아니고 슬픔과 나도 동의어가 아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더 배려하게 된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으로 내 삶을 배려한다. -47쪽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그저 믿고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뿐이다. 삶은 자신의 선택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고 후회가 있더라도 스스로 한 선택이기에 기꺼이 책임질 수 있다. -49쪽
시스템에 익숙해져 버린 상태로는 시스템을 볼 수 없다. 매트릭스 안에서는 매트릭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구조화의 시각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조를 볼 줄 알아야 개인에 대한 비난을 멈출 수 있다. 네 탓이 아니라고 다독일 수 있다. 각자의 사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 -55쪽 
부부는 평생 공놀이를 하는 관계다. 출산이라는 현실 과제를 앞에 두고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배려의 공을 던졌다. 남편은 자신이 받은 공을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혹여나 '집에서 놀면서'라며 쓰레기를 돌려주려 준비 중인 남편이 있다면 윌리엄 골딩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더 크게 돌려받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57쪽
충고라는 행위는 순식간에 관계를 구조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충고하는 나는 너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네 위에 선 자다. 우리는 동등하지 않다.' 순식간에 상대를 내 밑으로 밀어 넣고 상하 관계, 즉 구조화의 틀을 작동시킨다. (중략) '충조평판' (충고, 조언, 평가, 판단)보단 경청!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61쪽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것은 아이의 내면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선생님은 아이의 수업 태도와 시험 점수가 아닌 개개인의 존재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각각의 존재를 존중하며 그 속에서 특별함을 찾으려 했다는 말이다. -69쪽
"너는 잘못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사랑의 결실이야.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중략) 존재를 감싸 안는 말보다 더 큰 배려의 말을 없는 법이다. -71쪽
차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멈춰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기도 하다. 차별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상황에 따라 내가 다음번 차별의 대상이 된다. 졸업한 학교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연봉에 따라, 외모나 나이에 따라 우리는 차별하는 준거집단에 속하기도 하지만 차별받는 아웃사이더가 되기도 한다. -73쪽
역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특별한 누군가만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그 역사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81쪽
노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외부 세계로부터 침묵을 강요당하는 일이 늘어 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신체 노화가 노인을 인증하는 게 아니라 입에 지퍼를 채우도록 강요받는 암묵적 외부 공기가 노인을 늙게 만들고 있는지도. 상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배려다. 사랑하는 아빠,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는 이토록 인색해졌을까. 어쩌다 젊은이의 오만함을 나이든 부모 앞에서 내세우게 되었을까. 지금 내 부모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텐데 말이다. -91쪽
권력 가진 자의 입에서 "싫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구조의 하층부에 있는 장애 학생은 '싫다는 말을 들어도 되는 존재'로 대상화되어 버린다. (중략) 싫은 사람에게 싫다고 말하는 건 자유지만 자유를 행하며 하는 말이 상황과 관계를 어떻게 구조화시키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93쪽
'나는 할머니의 보물이다. 그런 나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다시 반짝여야 한다. 이대로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서 나머지 삶을 버리듯 없는 듯 살아 버리면 안 된다.' -95쪽
왜 페미니즘을 공부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이가 오십을 바라보니 이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없더라고. 어느덧 나는 갑의 위치가 돼 있더라고. 하지만 내가 관계 맺고 일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을의 위치에 있다고. 갑질하지 않기 위해, 몰라서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여성 인권이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기도 한 페미니즘을 공부하려 한다고. 내가 아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알고자 한다고. -105쪽
"개소리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야." (중략) 사람은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세상의 모든 개와 반려인에겐 미안하지만 지인의 입을 빌려 이럴 때의 말실수를, 그 '느낌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잠깐만 '개소리'로 지칭한다. 개소리는 모두가 한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개소리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개소리나 일삼는 개놈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개소리를 한 그'는 '그'라는 인간 전체의 극히 일부지만, 우리는 개소리를 한 번 들으면 그것에만 꽂혀 상대의 존재 전체를 개놈으로 규정한다. "개소리를 했으니 너는 개놈이야!"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 형상을 그린다. -111쪽
보호자가 아닌 동행인이 되어야겠구나, 그것이 아들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배려의 말이겠구나 -123쪽
배려한 게 아니라 배제한 것이다. 소수를 배제하는 것으로 다수의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익숙한 형태의 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129쪽
구조적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중요하다. 내게 당연한 것이 모두에게 당연하지는 않다. 나를 둘러싼 여러 환경 요소 덕에 어떤 부분에서는 특혜를 받으며 살았고 현재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133쪽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도움과 배려가 아니다.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특별한 필요'에는 도움이 아닌 지원을 하면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다.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정작 그 기회를 뺏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135쪽
의사와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치료사가 어떤 장애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당사자는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단지 장애가 있을 뿐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중략) 장애인을 볼 때 '장애'가 아닌 '인'을 먼저 보려 노력한다 -139쪽
무라카미 류의 방법!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멈추지 않는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후진 세상에 대한 복수라며 인생을 마치 축제처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 -147쪽
우리 엄마도 그랬다.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자르라"고. '여자' 대신 '남자'가 들어가는 게 더 자연스러운 문장을 엄마는 항상 '여자'로 바꿔 이야기했다. -169쪽
살다 보니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이 더 위험했다. 주변을 배려하는 이는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중략)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위장한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 속에는 욕심과 오만이 숨어 있다. 내가 아니어도 된다. 그래야 오만해지지 않는다. 그래야 변질되지 않는다. 그래야 '내 중심'이 되지 않는다. '내 중심'을 탈피해야 주변도 배려할 수 있는 법이다. -175쪽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배려의 언어를 찾지 못했다면 차라리 그 앞에서 침묵하는 게 낫다. 침묵하면 적어도 상처는 주지 않는다. -185쪽
우리 자신의 현재 모습은,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최적의 모습일 것이다. 미워서 꼴 보기 싫은 누군가도, 예뻐 죽겠는 아들도, 모두 살기 위해 그리되었다 생각하면 모든 걸 쉽게 단정 짓지 않게 된다.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이해하면 그의 상황까지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지도 살려고 그런 거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191쪽
장애는 우울하고 심각할 일이 아니며 미안할 일도 아니다. 얼마든지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개인의 상태다. 장애가 이렇게 단지 캐릭터가 될 때, 장애인과 장애 아이 부모와 우리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 때가 비로소 우리 모두 장애 혐오에서 자유로워지는 때일 것이다. -203쪽 
엄마로부터 풀려난 아들은 뛰듯 걷듯 지하철 안을 돌아다녔고 난 아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들의 움직임에 따라 지하철 안 모든 시선이 함께 움직였다. 5분이었다. 아들이 더 이상 시선을 받지 않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 5분 후 아들은 지하철 안의 당연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큰소리로 통화하는 아줌마 그리고 "우이 우이"하며 즐거워하는 발달장애 어린이가 모두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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