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서울의 바깥」, 박사랑, 창비 (2020)
나는 네, 하고 말했다. 네, 밖에는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다. -163쪽
23분까지만 쉬고 그다음엔 화장실에 가고 32분에 꺼내놓은 약 먹어. -165쪽
이 바닥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배운 건 높은 페이에는 지나친 피곤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나는 돈도 좋지만 나를 아끼고 싶었기에 아쉬워도 연결업체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중략) 그래, 돈 버는 게 나를 아끼는 거지 뭐. -166쪽
시험은 내 특기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실패가 더욱 두려웠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질 만한 일은 요령 좋게 피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하다 실패하는 건 정말 싫었다.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뭐랄까, 좀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준비는 하되 열심히는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숨겼다. -167쪽
시험 점수가 인간을 판단할 기준이 되고 그것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나는 그저 줄의 중상위권에는 서 있기 위해 무릎에 힘을 주고 버틸 뿐이니까. -173쪽
출신 대학을 밝히지 않는다고?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사회에서 벗어나겠다고? 웃기네. 학력으로 먹고살면서 학력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고한 척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침을 뱉고 싶었다. -176쪽
면접 전부터 그 회사는 야근이 많고 그에 다른 수당도 잘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 건 당연히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중략) 나는 아직도 내가 그때 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모른다. 분명히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176쪽
전체 수험생에서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건 10퍼센트 남짓일 뿐이고 나머지는. 여기서 생각이 멈췄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 거지? -177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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