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연수4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 서른번째 생일 '아, 그러고 보니' 내 서른번째 생일은 외국에서 보냈다. 단 한 번도 서른 살 생일에 캐나다에서 미역국을 먹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왜 토론토였느냐 묻는다면, 생일을 함께 보낼 사람이 토론토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물론 생일을 기념하여 그곳에 간 건 아니었지만. 혹시 서른 살이 되면 무얼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고 묻는다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하겠다(기억이 나지 않을 리가. 너무나도 바랐던 꿈이 있었다. 다만 그 꿈이 그토록 대단한 건 줄은 몰랐다). 어쩌면 그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보다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가'가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누구'가 '무엇'을 결정한다고도 믿는다. 물론 서른 살에 내 곁에 누가 있을 것인지 생각해본 것도 아니.. 2016. 2. 26.
『사랑이라니, 선영아』: 쫀쫀하다 나의 성격을 옷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초극세사 검은색 셔츠'? 단 하나의 올도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예민함의 극한. 그렇다고 예민하단 소리는 듣기 싫어서 어떻게든 예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삐져나온 보풀을 감추려는, 그래서 검은색인. 아무튼 '졸라 예민하고 쫀쫀한 사람'. 작년 이맘때 신발을 한 켤레 샀었다. 일주일 후면 미국엘 가야해서 멋 좀 내보려고 가죽 제품으로 장만했다. 거실에 앉아 아직 개시도 하지 않은 가죽 신발을 헝겊으로 살살 닦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성큼 다가오시더니 갑자기, 신발 멋있네, 하시며 말릴 틈도 없이 신발을 신어보셨다. 발에 맞지 않아 조금 무리하게 신발에 발을 욱여넣으셨는데, 벗고보니, 이런, 신발에 주름이 깊게 지고 말았다. '야속해도, 신으면 안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2015. 11. 5.
「모두에게 복된 새해 -레이먼드 카버에게」 : 말하자면 친구 "이 피아노, 긴 시간 안 노래했습니다. 그치?" -127쪽 * 오랫동안 연주하지 않으면 피아노는 서서히 죽어가듯이,어려서 이민 간 한 소녀에게 한국어는 거의 죽은 것이다.사람의 마음도 아마 그렇다.'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기 어려운 '그게' 오랫동안 잘 되지 않으면사람은 외로워진다.(외로운 것이나 죽어가는 것이나) 그래도 어쩌면,한번 외로워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건,망가진 피아노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보다,비뚤비뚤한 글씨체를 교정하는 것보다는 쉬울지 모른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그녀에게 나는 어떤 사람.다시 "말하자면 친구"부터라도 되고 싶다. ㅡ「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2015. 11. 4.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함께 걷다 보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고통의 종류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신체의 질병 때문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서, 또 어떤 이는 직업을 잃고 입시에 실패하여 고통을 겪는다. 고통을 겪는 이유는 사람들이 저마다 겪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고통의 가지수는 아마도 인구수와 비례할 것이다. 고통의 크기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그것이 농구공만 하여 견딜 만하다 말하고, 누구는 지구만 하여 도무지 견딜 수 없다 말하고, 또 누구는 타키온만 하여 고통이 있는 것 같지만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2015.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