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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4

「성탄특선」 : 의식주 아직은 아니지만, 12월이 되면, 거리엔 캐럴이 울려대고, 가로수엔 화려한 조명이 치렁치렁 달릴 것이다. 성탄절은 하루라지만, 성탄을 축하하는 기분은 한 달 내내 이어진다.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도 (솔직히, '알 게 뭐야' 아닐까?) 누구든지 왠지 모르게 한껏 들뜰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들. 모두가 즐거워야할 때. 크리스마스. 특별한 날. 정확히는 이브가 더 특별한 날. (왜 특별하냐고? 솔직히, 알 게 뭐야) 이날만큼은 나를 뽐내고 싶지만, 아무리 옷장을 헤집어봐도 저 많은 옷들 중에 나를 예뻐보이게 할 옷은 없다. 옷이 없어 투덜거리면서도, 남들처럼 왠지 영화 한 편은 봐줘야 할 것 같고, 이날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평소 잘 가지 못하던 패밀리레스토랑 정도는 가줘야 할 것 같다. 손에 리본 달.. 2015. 12. 4.
「나는 편의점에 간다」 : 거대한 무관심 한 카페에서 보고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재밌는 문구가 있다. '저희의 입은 무겁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장이었는데 그 뒤에 부연도 있었다. 떠올려보면 '다시 와줘서 고맙다. 당신의 파트너(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말하는 거겠지)는 바뀌었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을 절대로 지금의 파트너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거대한 관대다. 당신이 이곳에서 주고받았던 많은 말들과 당신이 다른 사람과 나누었던 모든 행위들을 눈감아 주겠다니.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카페로다. 우리는 그러한 카페에서 비로소 마음 편히 커피를 홀짝일 수 있다. * '나'는 편의점을 애용한다. 편의점에는 없는 게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 '거대한 관대'가 편의점을 찾는 큰 이유이리라. .. 2015. 8. 19.
「자오선을 지나갈 때」: 세 번째 노량진 세 번째 노량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2004년 재수 때 '진짜' 노량진에서였다. 재수하면 노량진. 노량진으로 들어가긴 가야겠는데 노량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그곳의 학원을 알아보던 중 대성, 정진과 같이 유명한 학원에는 입학 시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인 건가고 낙심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시험이 없는, 그래서 아무나ㅡ내가 그 '아무나'다ㅡ 들어갈 수 있는, 실제로 가봤더니 정말로 수녀도 있고 중도 있었던, 한샘학원에 들어갔다. 좁은 강의실에 들어서며 어두운 사람들이 그 두꺼운 파카들 껴입고 북적북적 모여 있는 광경에 압도되고, 밥 배급 기다리듯 고개 푹 숙이고 줄지어 앞으로 새까매질 교재들을 받아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첫 번째 노량진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일 년 남.. 2015. 6. 25.
「서른」 : 어딘가에도 어딘가에도 나처럼 힘겹게 서른을 지나갈 누군가가 있을 거란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 언니, 언니를 본 지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중략) 그때는 언니가 되게 언니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저도 서른이네요. 그사이 언니에게도 몇 줄로는 요약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겠죠? 바람이 계절을 거둬가듯 세월이 언니로부터 앗아간 것들이 있을 테죠? 단순히 '기회비용'이라고만 하기엔 아쉽게 놓쳐버려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말해도 어쩔 수 없어 홀로 감당해야 할 비밀과 사연들도요. (중략) 자식 노릇, 애인 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2.. 2015.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