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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55

「삼십대」: 일부러 내 반경으로 텅 빈 내 방에 누군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이 따뜻할 거라는데, 일부러 멀리서 내 반경으로 찾아와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차 타고 나가 밥 사주고 (자네 주머니 사정 뻔히 아는데), 이야기 들어주고 (내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한바탕 웃다가 (얼마만에 웃는 것인지), 다시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이렇게 황송할 수가, 난 멀리 못 나가네) 친구가 있어 내 계절은 이미 따뜻하다. 이런 친구 하나 있기에 내 삼십대가 외롭지 않다. ***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2015. 10. 21.
「슬픔의 진화」 : 모서리 이것도 저것도 자랑이 되지 않는 이 좋지 않은 세상에서, 아직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아닌 사람들의 슬픔이 내게 전해지지가 않는다. 슬픔을 생각해본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말일 테지. 사연 없는 사람 없을 텐데, 지금은 그것을 헤아릴 만한 민감한 모서리가 나에게 없음을 인정한다. 모서리 없이 뚱뚱해져만 가는 것은 더 이상 책상이 아닌 단지 죽은 나무 아닌가.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영원한 악천후여!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그러고는 긴 침묵.. 2015. 10. 14.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자랑 취업 관련 카페에 들어가보고는 이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하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답게 없는 게 없고, 독하리만큼 다 가지고 있다. 저들이 준비하는 것들을 보니, 요즘 취업에는 9종 세트가 필요하다고 한다. '학벌·학점·토익·어학연수·자격증·공모전 입상·인턴 경력·사회봉사·성형수술'이 그것인데, 게시판에 여간한 스펙으로 괜히 자랑했다가는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다. 9종 세트 외에도 국토대장정이나 마라톤 완주 경험을 강조하며 자기는 인내심이 누구보다 강하여 회사의 어떠한 압박에도 다 견딜수 있다는 둥,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자기의 장점을 드러내려 애쓰는데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높아질까만을 생각하다보니, 곁의 사람들을 둘러보는.. 2015. 10. 13.
「풍경이 흔들린다?」 :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이 와중에도 맡고 있는 게 몇 개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몇' 중에 어느 하나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선택과 집중에 대하여 고민과 결정이 필요한 시기다. 붙들고 있는 것들 중에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 자의는 모르겠고 타의 반으로 시작한 일인데, 중요한 일이기는 한데, 꼭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렇다고 함께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도 아주 즐겁다고는 못하겠는데, 그래도 '버티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똑같이 힘들고 팍팍한데 '놓지 않고' 있다. 왠지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놓으면 함께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을... 2015. 10. 6.
「개그맨」 : 2권 인생 한 동생이 상의를 해 온 적이 있다. '워킹 홀리데이'로 외국에 가고 싶은데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자니, 내는 이력서마다 모조리 퇴짜,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는 간다만,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지 회의감도 들고, 나간다고 별 수 생기겠냐마는, 일단 무작정 나가보고 싶은데, 이미 그곳에 애인이 있는 상태라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망설여진다는 내용이었다. 부모님에게 특히 아버지에게 애인 따라 도피하는 모습으로 비치어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장황하게 조언을 해주었지만, 정리해보면 '여러 생각 말고 나가라'였다. 네 길이 애인때문에 제한받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솔직하고 의연하게 설득하면 부모님도 이해해주시지 않겠느냐고. 그 동생은 모레면 출국한.. 2015. 10. 3.
「나는 편의점에 간다」 : 거대한 무관심 한 카페에서 보고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재밌는 문구가 있다. '저희의 입은 무겁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장이었는데 그 뒤에 부연도 있었다. 떠올려보면 '다시 와줘서 고맙다. 당신의 파트너(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말하는 거겠지)는 바뀌었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을 절대로 지금의 파트너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거대한 관대다. 당신이 이곳에서 주고받았던 많은 말들과 당신이 다른 사람과 나누었던 모든 행위들을 눈감아 주겠다니.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카페로다. 우리는 그러한 카페에서 비로소 마음 편히 커피를 홀짝일 수 있다. * '나'는 편의점을 애용한다. 편의점에는 없는 게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그 '거대한 관대'가 편의점을 찾는 큰 이유이리라. .. 2015. 8. 19.
「자오선을 지나갈 때」: 세 번째 노량진 세 번째 노량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2004년 재수 때 '진짜' 노량진에서였다. 재수하면 노량진. 노량진으로 들어가긴 가야겠는데 노량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그곳의 학원을 알아보던 중 대성, 정진과 같이 유명한 학원에는 입학 시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인 건가고 낙심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시험이 없는, 그래서 아무나ㅡ내가 그 '아무나'다ㅡ 들어갈 수 있는, 실제로 가봤더니 정말로 수녀도 있고 중도 있었던, 한샘학원에 들어갔다. 좁은 강의실에 들어서며 어두운 사람들이 그 두꺼운 파카들 껴입고 북적북적 모여 있는 광경에 압도되고, 밥 배급 기다리듯 고개 푹 숙이고 줄지어 앞으로 새까매질 교재들을 받아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첫 번째 노량진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일 년 남.. 2015. 6. 25.
「서른」 : 어딘가에도 어딘가에도 나처럼 힘겹게 서른을 지나갈 누군가가 있을 거란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 언니, 언니를 본 지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중략) 그때는 언니가 되게 언니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저도 서른이네요. 그사이 언니에게도 몇 줄로는 요약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겠죠? 바람이 계절을 거둬가듯 세월이 언니로부터 앗아간 것들이 있을 테죠? 단순히 '기회비용'이라고만 하기엔 아쉽게 놓쳐버려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말해도 어쩔 수 없어 홀로 감당해야 할 비밀과 사연들도요. (중략) 자식 노릇, 애인 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2.. 2015. 4. 24.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함께 걷다 보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고통의 종류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신체의 질병 때문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서, 또 어떤 이는 직업을 잃고 입시에 실패하여 고통을 겪는다. 고통을 겪는 이유는 사람들이 저마다 겪는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고통의 가지수는 아마도 인구수와 비례할 것이다. 고통의 크기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그것이 농구공만 하여 견딜 만하다 말하고, 누구는 지구만 하여 도무지 견딜 수 없다 말하고, 또 누구는 타키온만 하여 고통이 있는 것 같지만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2015.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