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도 맡고 있는 게 몇 개 있다.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몇' 중에 어느 하나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선택과 집중에 대하여 고민과 결정이 필요한 시기다. 붙들고 있는 것들 중에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 자의는 모르겠고 타의 반으로 시작한 일인데, 중요한 일이기는 한데, 꼭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렇다고 함께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도 아주 즐겁다고는 못하겠는데, 그래도 '버티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똑같이 힘들고 팍팍한데 '놓지 않고' 있다.
왠지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놓으면 함께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을. 마치 옆 사람 다칠세라 그 무거운 목봉을 온몸 부들부들 떨어가며 안간힘을 다해 들고 있는 사람들처럼. 도중에 떨어뜨리는 사고를 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당당하게 내려놓고 싶은 것이다. 균형을 깨고 싶지 않다. 서로 먼저 놓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저버리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버팀목의 역할만 고수할 수는 없겠지만 (기우뚱한 적은 많았지만 버팀목의 역할을 한 적이 있긴 있었나?) 풍경의 역할로라도 함께 견뎌보고 싶다.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
어금니 하나를 빼고 나서
그 낯선 자리 때문에
여러 번 혀를 깨물곤 했다
외줄 타는 이가 부채 하나로
허공을 세우는 건
공기를 미세하게 나누기 때문,
균형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지만
그건 농담일 게다
한쪽 무릎을 꺾으면 온몸이 무너지는 건
짐승만의 일이 아니다
지친 다리 끌며 가서 보았다
인각사 대웅전 기둥이
균형을 위해 견디고 있는 것을,
기우뚱해 있는 저 버팀목까지도
서로 다른 쪽을 위해 놓지 않고 있는 믿음을,
처마 끝에서 풍경은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공기를 조절하며 추녀를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소리 내어 기둥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ㅡ「풍경이 흔들린다?」, 『뒷모습』,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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