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관련 카페에 들어가보고는 이 세상에 대단한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하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답게 없는 게 없고, 독하리만큼 다 가지고 있다. 저들이 준비하는 것들을 보니, 요즘 취업에는 9종 세트가 필요하다고 한다. '학벌·학점·토익·어학연수·자격증·공모전 입상·인턴 경력·사회봉사·성형수술'이 그것인데, 게시판에 여간한 스펙으로 괜히 자랑했다가는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다. 9종 세트 외에도 국토대장정이나 마라톤 완주 경험을 강조하며 자기는 인내심이 누구보다 강하여 회사의 어떠한 압박에도 다 견딜수 있다는 둥,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자기의 장점을 드러내려 애쓰는데들,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높아질까만을 생각하다보니, 곁의 사람들을 둘러보는 일에 소홀한 것 같아서. 남들을 돌아보는 건, 왠지 내 앞가림 못하고 손해보는 것만 같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위해 슬퍼하는 일은 점점 아득해져만 간다. 만약 기업이 슬픔을 가진 사람을 뽑는다면, 이제는 누구라도 고농축 슬픔을 가져보려 애쓸 테지만, 그때는 이미 슬픔도 자랑이 되지 않겠지. 이 악물어야만 하는 이 세상은 점점 독해지고 있다.
***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ㅡ「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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