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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시

「슬픔의 진화」 : 모서리

by 새 타작기 2015. 10. 14.

이것도 저것도 자랑이 되지 않는 이 좋지 않은 세상에서, 아직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아닌 사람들의 슬픔이 내게 전해지지가 않는다. 슬픔을 생각해본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말일 테지. 사연 없는 사람 없을 텐데, 지금은 그것을 헤아릴 만한 민감한 모서리가 나에게 없음을 인정한다. 모서리 없이 뚱뚱해져만 가는 것은 더 이상 책상이 아닌 단지 죽은 나무 아닌가.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문장이었다


(그러고는 긴 침묵)


나는 하염없이 뚱뚱해져간다

모서리를 잃어버린 책상처럼


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다!

심지어 독하다는 전갈자리 여자조차!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슬픔에 대해 아는 바 없다

공에게 모서리를 선사한들 책상이 될 리 없듯이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어떤 종류의 가구로 진화할 것인가?

이것이 내가 밤새 고심 끝에 완성한 질문이었다


(그러고는 영원한 침묵)


ㅡ「슬픔의 진화」,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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