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노량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2004년 재수 때 '진짜' 노량진에서였다. 재수하면 노량진. 노량진으로 들어가긴 가야겠는데 노량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그곳의 학원을 알아보던 중 대성, 정진과 같이 유명한 학원에는 입학 시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인생은 시험의 연속인 건가고 낙심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시험이 없는, 그래서 아무나ㅡ내가 그 '아무나'다ㅡ 들어갈 수 있는, 실제로 가봤더니 정말로 수녀도 있고 중도 있었던, 한샘학원에 들어갔다. 좁은 강의실에 들어서며 어두운 사람들이 그 두꺼운 파카들 껴입고 북적북적 모여 있는 광경에 압도되고, 밥 배급 기다리듯 고개 푹 숙이고 줄지어 앞으로 새까매질 교재들을 받아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첫 번째 노량진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일 년 남짓 그 생활이 시간 순으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고, 그 느낌과 몇 장면들만 파편으로 남아있다. 복도의 사물함. 화장실의 통합식 소변기 ㅡ대단한 건 아니고 옛날식 휴게소에 가면 있던, 좌우의 사람들과 한 소변기를 같이 쓰던, '스덴'으로 된 그 소변기ㅡ. 복도 측 분단의 앞에서 둘째 줄 왼쪽 자리. 내 옆자리에는 묵묵하고 재미 없었던 고창에 사는 태중이와 앞자리에는 쉬는 시간마다 옥상에서 뒤돌려차기를 보여 주던 범박동에 사는 안영준, 두 동생들. 점심은 월초에 얼마씩 내고 시켜먹던 한솥 도시락. 옥상으로 몰려들던 더러운 비둘기들. 저녁은 요즘은 보기 힘든 오뚜기 김치면ㅡ농심 김치면보다 김치 강정이 압도적으로 크고 맛있었다ㅡ과 컵밥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정체 모를 업체의 김치덮밥으로 웬만하면 옥상에서 해결. 가끔 큰 맘 먹고 간식은 계란 묻혀 간단하게 구워 내는 천 원짜리 토스트. 한 달에 한 번 ㅡ나중에는 두 번ㅡ보던 모의고사와, 모의고사 본 날에는 진짜 큰 맘 먹고 꼭 먹어주던 삼천 원짜리 햄버거. 학원 뒷골목의 왕돈까스와 참깨 많이 뿌린 김치볶음밥. 왜 주로 먹는 것만 기억나는 지 잘 모르겠는데, 먹는 걸로 버텼기 때문인 것도 같다. 가끔 지칠 때 디사이플스 집회 간다고 4층 강의실에서 가방 던지고 도망치기도 하고, 동생들과 이어폰 한 쪽씩 끼고 크라잉넛의 <고물 라디오>를 듣기도 하고, 모의고사 점수 그래프가 올라가면서 오답노트에 오려 붙일 문제가 점점 적어져 내심 흐뭇해 하고. 그 일 년 남짓의 시간이 아주 짧게, 그러면서도 생기 있게 기억되는 걸 보면, 그래도 그 시간들이 행복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별로 적고 싶지 않지만, 2011년 하반기부터 2013년이라 써야할지 그 전으로 써야할지 아무튼 애매한 시점까지 '동네'에서였다. 노량진은 아니었지만 장소가 어디든 노량진스러운 삶은 노량진 라이프라 하자. 산소가 나온다는, 실제로는 가습기 따위를 틀어놓고 소리만 요란했던 월 십만 원짜리 독서실. 온통 깜깜하고 자리마다 커튼이 둘러져 있어 서로가 보이지는 않지만, 발걸음 소리며 기침 소리며 긁는 소리며 속삭이는 소리며, 온갖 소리란 소리는 다 들리는. 일부 감각이 제한되면 다른 감각은 극도로 발달한다던가. 청각의 필요 이상의 발달에 도무지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군 제대 후 야심차게 시작했던, 그러나 하다 보니 만만치 않았던, 고지가 굉장히 높게만 느껴졌던. 그래도 학원의 도움보다는 내 스스로의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며 아침부터 자정까지 그 좁은 책상 속에만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보낸 시간들. 계속해야 하나 멈춰야 하나 결단하지 못해 어영부영 흘려 보낸 시간들. 최선을 다하기는 했었는지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시간들.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온 것만 같아 돌아볼수록 아쉽기만 하다.
세 번째는 2015년 6월이라 해야겠다. 여기 저기 살짝씩 발은 담가봤지만 내 자리다 싶은 곳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몸사리고 있다가 더 지체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한번 노량진 라이프로. 이번에는 '내 방'이다. 인터넷 강의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나이는 들고 여전히 돈은 없고 하니, 결국은 내 방이다. 밥도 산소도 내 방에서 얻고 있다. 한 집에서 눈치 안 주는 식구들의 배려가 고마울 뿐이다.
현재가 힘들지 과거와 미래는 결과와 상관 없이 아름답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러함을 감안하더라도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나에게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지 않나, 싶다. 첫 번째야 결과가 좋아서 더욱 그렇겠지만, 두 번째도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도 내 삶이자 나였는 걸. 세 번째도 잘 지나가고 싶다. 첫 번째를 지나갈 때 세 번째는커녕 두 번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현실은, 난 '여전히' 지나가고 있다. 지나감의 연속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이 시간들을 푸석푸석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인형 하나씩을 쥐어주면 어떨까. 이 젊은 날, 젊은 사람 얼굴이 찌푸러지고 싶지는 않다.
*
나는 우리가 대학 가서 연락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노량진은 모든 것이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만 년 만에 해보는 데이트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대꾸하지 않자 민식이는 정말 소년다운,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말을 했다.
"인형 사줄까?" -144쪽
2005년 가을. 사람들 틈에 끼어 서울의 불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노량진의 이름을 생각했다. 다리 량(梁) 자와 나루터 진(津) 자가 동시에 들어간 곳. 1999년 내가 지나가는 곳이라 믿었던 곳. 모든 사람이 지나가는 곳. 하지만 그곳이 정말 '지나가기만'하는 곳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7년이 지난 2005년 지금도 나는 왜 여전히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 중'인 걸까. -148쪽
「자오선을 지나갈 때,『침이 고인다』,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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