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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맛이 나겄냐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4. 8.
「무지개풀」: 우리가 노는 방식 풀을 하나 가지고 싶다고 P는 생각했다. -95쪽 K와 P가 노는 방식이 참 재밌다. 좁아터진 거실에 거대한 별모양 풀을 놓다니. 엉뚱하다. 아내도 풀을 갖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거실 복판에는 절대 두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질색하는 건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인데, 그래서 나는 집에서도 발뒤꿈치를 살며시 들고 걸어야 하고, 분리수거도 철저히 해야하며, 말할 때도 조금은 숨을 죽여야 한다. 아내가 두고 싶어하는 풀은 따로 있다. 거실에 두는 작은 고무풀 말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갔다하려면 족히 오십 미터는 헤엄쳐야 하는 규모의 진짜 풀. 허무맹랑으로 듣지 않는다. 아내가 원한다면 유럽의 소도시 어딘가로 풀 제작을 위한 준비탐사를 떠날가도 한다. 아내는 지금도 길 가다 기다란 공터만 보면 풀을 .. 2020. 3. 30.
『창작과비평 2020 봄』, 창비 (2020) 소설 「서울의 바깥」, 박사랑, 창비 (2020) 나는 네, 하고 말했다. 네, 밖에는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다. -163쪽 23분까지만 쉬고 그다음엔 화장실에 가고 32분에 꺼내놓은 약 먹어. -165쪽 이 바닥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배운 건 높은 페이에는 지나친 피곤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나는 돈도 좋지만 나를 아끼고 싶었기에 아쉬워도 연결업체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중략) 그래, 돈 버는 게 나를 아끼는 거지 뭐. -166쪽 시험은 내 특기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실패가 더욱 두려웠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질 만한 일은 요령 좋게 피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하다 실패하는 건 정말 싫었다.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뭐랄까, 좀 민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준비는 .. 2020. 3. 30.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영화엔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다. 동급생과의 연애, 후배와의 감정, 친구와의 우정. 솟아났다가 사그라들었다가. 그 중 한문학원 선생님과 이야기가 인상깊다. 아무것도 아닌, 잠깐 스쳐갈 그런 관계일 수 있었던 한 아이에게 정말 예를 다해 대해준 선생님의 모습에 큰 감동이 인다. 다음에 만나면 다 얘기해준다는 말이 꼭 진실로 들리는데 영영 그럴 수 없어 아련하다. 그래도 이 아이는 정중했던 한 어른을 기억하며 꿋꿋하게 살아갈 테지. 2020. 3. 30.
「서울의 바깥」: 인서울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내 얘긴가 싶었다. 나도 '나'처럼 공시생이었다. 나도 공부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167쪽). '나'는 실패가 두려워 누군가에게 공무원 준비한다고 걸 숨겼다는데,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았고 끈질기게 웬만큼 하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리기도 했었다. 당장 취직하고 돈 벌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핑계가 되었던 것도 같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나'처럼 어느 순간 나도 돈이 필요했다. 공부 첫 해에는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어 괜찮지만 해가 갈수록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가 아주 창피해진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168쪽) 과외나 할까하는 마음에 찾은 게 교육회사 간판을 단 한 회사였고 거기 들어가 자세히 보니 역시 과외전문업체였다. 교육의 질보다는 양을 따지는 '회사'였는데 그.. 2020. 3. 29.
『웅크린 말들』: 쉬는 모습은 따로 없어야 했다 느그 뱉고 싼 추저븐(더러운) 것들 한 달을 닦아도 느그 놈들 하루 껌값도 못 번다니. 씨벌, 매시꼽다(매스껍다). - 『웅크린 말들』, 이문영, 후마니타스 (2017) 2013년쯤이었나. 돈 좀 벌어야겠다 싶어 한 대학병원에서 기능원으로 일 년쯤 일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공부한답시고 고정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어깨도 축축 처질 때였어서 뭐라도 좀 해보자는 마음이 컸고, 새벽같이 출근해서 낮이면 퇴근할 수 있어 오후부터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또 컸다. 가 보니 채용구조는 호텔이든 병원이든 똑같았다. 중개업소를 통해 들어가는 방법이 유일했다. 그 중간다리는 한 달에 월급을 오십 만원씩 떼 처먹는 곳이었는데 그렇게 지랄같아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차라리 벼룩의 간.. 2020. 3. 29.
『웅크린 말들』, 이문영, 후마니타스 (2017) 누구든 존재한다는 이유로 신기해질 이유는 없었다. -12쪽 강원랜드에 한판 놀러 와선 겉만 보고 사북이 좋아졌다는 인간들이 있었다. 탄광이 한창일 때 관광노보리나 보고 간 놈들과 똑같았다. 보고 구경하는 마른 눈으로 살고 노동하는 사람의 습기를 알아챌 순 없었다. -14쪽 언어는 때로 선동이었고, 자주 기만이었다. 과거 그를 '산업 전사'라고 칭했던 언어는 현재의 그를 '노가다'라고 불렀다. 석탄 증산을 '애국'이라며 독려했던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감산과 폐광이 '합리화'라며 말을 바꿨다. 언어를 정의하는 권력은 그와 동료들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뒤바꾸며 언어를 감염시켰다. -14쪽 정치가 언어를 소처럼 부릴 때 그들은 소처럼 일만 하다 삭아 갔다. -28쪽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존재하.. 2020. 3. 28.
『나를 조금 바꾼다』, 나카가와 히데코, 마음산책 (2019) 자식에게 내 욕망을 투영해서 모든 걸 쏟아부우면 관계는 어그러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길 수 있도록 완전하게 품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29쪽 가족 사이에도 의식적인 거리 두기 연습이 필요하다. 내 자식이고, 내 남편이고, 내 아내니까 모든 사생활을 공유해야 하고, 어떤 벽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그게 지나치다 보니 늘 나보다 가족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시야에서 벗어나면 초조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37쪽 간혹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백이면 백 무슨 말을 한 건지 다시 묻게 된다. 또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많은 사람 의견에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이다. -47쪽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 2020. 3. 25.
1917 (1917, 2019)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0.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