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75

짱나 잠깐 나가 통화를 하고 오더니 한껏 찡그린 얼굴로, "아, 짱나......" 한없이 둔감한 나에겐 이해되지 않는 짜증.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바로 혀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동으로 살아내는 사람의 차이다. 그 사람은 함부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거다. 2016. 9. 6.
예상 못한 도서관에 K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이 왔다. 예상치 못한 K와 약속된 애인. 이럴 땐 이상하게 앞의 경우에 신경을 쏟게 된다 난. 애인의 자발적인 양보를 기대하면서. 미안할 따름. K와 한참을 놀아주다 보니 어느덧 도서관을 닫을 시간. 부랴부랴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그제서야 짬을 내어 애인과 말을 섞는다. 손걸레는 저기에 있고, 의자는 모조리 올려줘, 류의 대화. 미안할 따름. 도서관을 나서며 K를 위해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나와 K가 나란히, 애인은 서너발자국 떨어진 뒤에서. 한 이십 분 걸었나, 버스정류장을 한 블럭 앞둔 횡단보도에서 K가 갑자기 나와 애인의 손을 덥썩 잡더니 둘을 포개어 놓는다. 거리를 두고 쫓아오던 애인이 못내 안쓰러웠는지 "여기부터 손 잡고 가셔요" 한다. 또, 양손.. 2016. 9. 4.
세탁기소리 한여름에 웬 감기. 노곤한 몸으로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누웠는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정한 기계음 뒤에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마치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에 누운 듯, 하마터면 깜빡 잠이 들 뻔했다. 섬집 아기가 된 기분. 2016. 8. 5.
웃음 너무 웃어서 짜증이 난 적이 있다. 교회 수련회에 웃음치료사였던가 행복전도사였던가가 와서 그에게 웃음강의같은 걸 들었는데, 한 시간 동안 정말 말 그대로 기계같이 웃고 박수치다 끝났었다. 무턱대고 웃는 게(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웃으라니까 일단 웃고 보는) 처음에는 그럭저럭 재미도 있더니, 한 삼십 분쯤 웃고 나니까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오고, 끝날 때 돼서는 급기야 내가 왜 웃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짜증은 날 대로 나서, 얼굴 근육도 입도 아프고 손바닥도 아픈 지경이 됐었다. 세상엔 별의 별 강의와 별의 별 직업이 있구나 싶었다. 치료는 무슨. 사람 힘 빼는 시간였달까. 한 시간의 웃음이 끝나고 남은 건 표현하기 힘든 찝찝함과 허무함. 세상 시름이 이런 웃음으로 나아질 수만 있다면, 난 이미 동물원의 물개.. 2016. 7. 25.
생긴대로 "생긴대로 일하네."란 말씀을 들었다. 내가 어떻게 생겼지? 나처럼 생겼으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오해는 말아야할 게, 분명 '생긴대로 노네'할 때의 '생긴대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뭐. 솔직한 사람의 참신한 축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2016. 7. 11.
자연의 소리 길가의 꽃도, 제법 유속이 빠른 강물도, 높게 뻗은 빌딩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세상이 검게 보였다. 지금만은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기를 바랐다. 말을 듣는 것이 싫었고, 하기도 싫었음은 물론이다. 자연의 소리만 듣고 싶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누가 내 몸을 만지는 것도 참기 어려웠다. 살며시 스치는 바람에도, 믿을지 모르겠지만 아팠다. 하도 아파서 소름이 돋았다. 이건 몸이 보낸 경고 신호. 이런 신호를 만났을 때 금은방집 아들인 내 친구는 길 가다 전봇대를 부여잡고 울었다고 했다. 한걸음도 더 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내 친구는 아마 바지에 몽땅 터뜨렸다고 했던 것 같다. 한낮부터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ㅡ160625, 한강 망원나들목 (정말 검고 어둡다, 어쨌든 한강)(한.. 2016. 6. 30.
L 세상에는,기억해야 할 일도 많고, 생소한 직업도 많고, 읽어야 할 좋은 소설도 많다.ㅡ160622 신촌 이한열기념관 2016. 6. 30.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개는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철창 사이로 몇 사람이 둘러서서 철판 위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ㅡ160622 2016. 6. 30.
160617 오늘식물 흰 것도 노란 것도 다 씀바귀. 2016.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