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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120

개와 고양이. 우리동네 동물들. 겨울을 맞아 다들 건물 위로 위로.개는 저 위에서도 쓸쓸해보였고, 고양이는 저 위에라서 더 도도해보였다.개는 이따금 늑대처럼 울었다. 고양이는 제 아래 있는 건 다 아랫것으로 본다지?어쨌든 한 동네 사는 인연으로. 2016. 1. 23.
책을 도로 가지고 오며 중고서점에 책을 팔고자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팔려는 책이 받은 책이라 "寄贈" 도장이 찍힌 내지의 첫 장을 찢어내려고, 책의 가운데 부분을 칼로 조심스럽게 그었다. 깐깐한 서점이 기증도서는 받지 않는다. 잘린 면이 깔끔하지가 않아 거기에 풀을 살짝 발라 꾹꾹 눌렀다. 이정도면 찢어낸 티가 나지 않는 것도 같아 책을 가방에 넣고 서점으로 갔다. 멀끔하게 생긴 남자 알바생이 카운터에 서 있다. 노련해 보이려고 폼 잡고 있지만 영락없는 신출내기다. 우물쭈물, 쭈뼛쭈뼛하며 하나하나 사수에게 검토받는 꼴이 꽤 우습다. 아마도 책 매입 업무를 혼자서는 처음으로 해보는 눈치다. 내가 내민 책을 탐정의 눈빛으로 이리 돌리고 저리 펴며 결함을 찾는데 필요 이상으로 열심이다. 이게 뭐라고 나도 순간 긴장이 됐다.. 2016. 1. 23.
잦은뇨 커피 한 잔의 대가는 pollakisuria의 밤. 2016. 1. 21.
나의 車를 드세요 '장기도사'로 장기를 두면 좋은 점 하나. 그 어플에는 방금 둔 수가 호수(好手)인지 악수(惡手)인지 금방 알게 하는 장치가 있다. 0.00점부터 시작하여, 잘 둔 수라면 (+), 못 둔 수라면 (-)로 점수가 시시각각 변하는 방식이다. 만약 내 졸(卒)을 하나 잃게 된다면 -2.54, 상대방의 마(馬)를 하나 잡게 된다면 +5.72, 이런 식이다. 장기 초반에는 줄다리기를 하듯 시작점 '0'에서 작은 폭으로 당기고 끌려가는 식이다가, 장기 중반 어느 한쪽이 균형을 잃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이든 (-)이든 점수가 한쪽 끝으로 치닫는다. 장기가 어느 정도 두어진 상황에 점수가 +5~10점대만 유지된다면 그때부터는 나의 기물과 상대방의 기물을 맞바꾸는 식으로 장기만 두어도 무난히 이길 수 있다. 반.. 2016. 1. 21.
사람을 찾습니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82세 되신 김병운 할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검정색 패딩점퍼를 입고, 신발은 하얀색 운동화를 신으신 할아버지를 보시거나 보호하고 계신분은 가까운 역무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주변을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아주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몇 안되는 할아버지들은 죄다 거무접접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또 노인들의 운동화는 허연 것이 기본 아닌가. 좀 구별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필요했다. (너무나 빈약한 안내방송을 듣고 죄송하지만 조금 우습기도 했는데) 오죽하면 이리 뻔한 정보만을 내놓았겠는가는 생각도 든다. 그냥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할아버지라서, 딱히 뭐라 설명할 것이 없고 해서. 대개 우리 할아버지들이 그렇지 .. 2016. 1. 16.
예쁘다는 말 두 여자아이가 대화를 하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일곱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저보다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넌 어쩜 그렇게 예뻐?"라고 하자, 한 손은 언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떡꼬치를 쥔, 다섯살 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는 몹시 부끄러운 표정으로 히힛, 하며 웃었다. 예쁘다는 말. 저 작은 아이에게도 통하는, 과연 세대를 초월하는 칭찬이로다. 물론 진심으로 느꼈기에 그랬겠지만. 2016. 1. 5.
엄마들 며칠 사이 뉴스에서 '엄마'가 한 일들을 보고 들었다. 1. 한 이십대 엄마는, 다섯 살 난 친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딸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딸의 몸에 뜨거운 물을 수차례 뿌린 결과, 결국 친권을 박탈당했다. 어린아이가 어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건 그맘때엔 어쩌면 당연한 행동인데. 오히려 엄마가 아이의 말을 듣지 않아온 건 아닌지. 2. 시뻘건 옷으로 맞춰 입고 자칭 '엄마부대'라고 하는 나이 지긋한 엄마들은, 위안부 문제를 지지부진 끄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제는 용서하라'며 용서를 강요하고 있었다. 한평생을 어떠한 권리도 없이, 모든 것을 뺏긴 채 살아오신 할머니들에게, 마지막 남은 권리인 '스스로 용서할 권리'마저 빼앗으려 하다니. 이 세상에서 .. 2016. 1. 5.
올해의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91:14) "Because he loves me," says the LORD, "I will rescue him; I will protect him, for he acknowledges my name. 2016. 1. 1.
이런 관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때문에, 미워해야할 사람을 미워하지 못해, 치유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관계의 상처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가해자 격의 사람은 정작 아무런 가책도 없이 쌀의 땅에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오히려 피해자 격의 사람은 용서 앞에 짓눌려 사는 모습이. 나도 그 말씀을 존중하므로, 차마 용서하지 말라고 권면할 수는 없다. 대신 내가 택한 방법은 다친 사람을 더 좋아해주는 것. 한없이 자기를 파괴하고 있는 사람을 꼭 끌어안아 주는 것. 그런 관계가 있었다면 이런 관계도 있음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 (설마? 오 주여.) 2015.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