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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120

인턴 올해의 영화를 이야기하다, H는 을 꼽으며 울었다. 그 영화가 울 만한 영화는 아닌데 왜 우나 싶었으나 생각해보니, 맞아, 도 여러모로 볼 수 있는, 그런 영화였지. 나는 잘 나가는 ceo의 남편이자, 가정주부로서 살아가는 '남자의 입장'에서, 그가 어쩌다가 바람을 피우게 되었는가에 주목하며 영화를 보았는데. H는 잘 나가는 여성ceo(이 단어도 남녀 불평등을 조장하는 말이던가?)로서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던 와중에, 남편의 외도를 마주했던 '여자의 입장'에서 보았던 거다. 병치레 하고도 힘들다 소리 한번 못하고, 쉬지도 못한 채 퇴원한 다음날 바로 출근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울분이 차올랐나 보다. 본인도 꿈이 있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어느새 가장의 멍에를 지고 있어, 앞으로는 나.. 2015. 12. 28.
난쟁이 키가 아주 작은 아저씨가 지하철에 탔다. 보통 작은 게 아니라 난쟁이다. 나는 뒤뚱거리며 계단을 내리던 아저씨를 성큼성큼 지나쳐, 진작에 지하철에 타 좌석에 앉아있는데, 아저씨는 한참 후에 문이 닫히기 직전에나 겨우 지하철에 올라탄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자리에 앉은 내 엉덩이가 움찔하는데, 다행히도 아저씨는 저 멀리 노약자 좌석으로 간다. 아저씨는 두 손으로 의자를 딛고 점프하듯 올라 타 자리에 앉는다. 앉아 있는 아저씨의 두 다리는 꼬마처럼 앞으로 쭉 뻗어 노란색 신발의 밑창이 다 보인다. 아저씨의 얼굴을 봤다. 미남형이었다. 여느 아저씨들처럼 머리가 희끗거리고 얼굴에 검게 세월이 묻어 있었지만, 푸근함을 주는 좋은 인상이었다. 아저씨가 계속 신경쓰여 자꾸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볼때마.. 2015. 12. 27.
구피, 새끼 낳다 (구피가 새끼 낳는 걸 한참을 지켜보시던 어머니) 어머니 : 얘넨 새끼날 때 엄청 더디게 낳네.나 : 그렇겠지. 얼마나 힘들겠어.어머니 : 하긴, 사람도 몇 시간을 진통해서 낳으니. 수조에 새끼 밴 구피가 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새끼들을 낳고 있다. 어머니는 저 어미 구피가 안쓰럽다. 다른 하나도 출산이 얼마남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수컷들이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짓궂게 군다. 어머니는 그게 또 안쓰럽다. 쫓기는 녀석을 연민의 눈빛으로 보다 못해 뜰채로 건져 작은 수조로 옮겨 놓으신다. 내가 보기엔 '물고기가 또 새끼 낳는구나'인데, 어머니는 그게 아닌가 보다. 안타깝게도 태어난 아이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ㅡ151226 (사진 속엔 구피 사촌뻘 되는 놈들도 있다) 2015. 12. 26.
나중에? (언젠가 책방 주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중) 요조 : 나중에 하려고요. 지인 : 지금 하면 왜 안 되는데요? 그렇지, 지금 해도 되는데 내가 왜 굳이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지? ㅡ'책방 무사' 주인장 요조, 중 * 내가 하고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은,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 지금. ㅡ151225 2015. 12. 26.
콘돔 판매량 1위인 날. 그날은 바로 (출처 : 페이스북 페이지 sogm) 위 게시물에 재미있는 댓글과 현명한 대댓글이 달려, 그것들을 소개합니다. 댓글 : "예수탄생을 축하면 우리도 새생명잉태에 힘쓰겠다는건데 왜?"sogm : "그럼 콘돔 판매율이 낮았겠죠?" 핑계대지 맙시다. 하하하. 물론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2015. 12. 22.
'15번' 결혼식 1. '15번'이 결혼한다기에 간만에 MRD 모였다. 예도해준답시고 정복 맞춰 입고 왔는데, 단추 안 잠기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도 바지 지퍼 반쯤 연 채로 칼을 들었다. 칼끝은 어긋나고 발도 안 맞았지만 하객들은 그런 거 모른다. 2. 축가 시간. 신부는 서 있고, 맞은 편에 '15번'의 친구가 마주 서 있고, '15번'은 그 옆에 앉아 기타 반주를 한다. 곡명은 한동준의 . 지금껏 들어본 축가 중 가장 난감한 노래. 친구가 괴상한 미성으로 1절을 마치자, 2절부터 '15번'이 화음을 넣기 시작한다. 푸훗. 가창력이 그 나물에 그 밥. 노래가 후반부로 치닫는데, 눈앞의 광경에서 문득 이상한 위화감이 든다. 마치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너를 사랑한다'고 구애하는 장면같달까. 게다가 사랑의 주도.. 2015. 12. 22.
바람직한 뉴스 할아버지가 얼마전 돌잡이로 청진기(약탕기였나?)를 잡은 손자에게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 "딴 거 되지 말고 의사 돼라. 그래야 구속 안 된다." 앞말은 그럭저럭 칭찬인 것 같은데, 뒷말이 엉뚱하다. 구속이 안 된다니. 의사가 어떻길래. 우연인지 몰라도, 이날따라 뉴스에는 의사준비생이 나왔고, 우연인지 몰라도, 그 전도유망한 사람이 지하철에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138여 회나 도촬을 했다는, 한국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이 뒤따랐고, 그 의사준비생의 변호인은 그건 고의도 아니고 우발적이기 때문에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게 나온 것 같았고, 그런 일은 천번이고 만번이고 우발이 가능한 나라(겨우 138번 가지고 호들갑은.)에서는 정말 별 일 아니기 때문에 재판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대수롭지 않은 마무.. 2015. 12. 21.
붕어빵, 팥, 시간 붕어빵아줌마 : "지금 몇 시에요? 한 여섯 시쯤 됐어요?"나 : "여섯시 반 조금 지났어요." 붕어빵아줌마 : "어유, 생각보다 이르네. 이거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난 재료 가져온 거 다 쓰면 집에 가는 거에요." 저마다 시간을 재는 방식이 있다. 붕어빵아줌마의 측정도구는, 붕어빵 속에 들어갈 팥 앙금 한 통이었다. 날마다 약간의 오차야 있었겠지만, 아줌마는 긴 세월 한 곳에서 같은 양의 붕어빵을 팔다보니, 팥이 이 정도 남았으면 몇 시쯤 됐겠구나, 어림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붕어빵 굽는 틀이 돌아가는 모양으로는 작은 단위의 시차를, 특정 손님의 방문으로는 특정 시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서 학교 종소리가 울리면 고사리들이 몰려들기 전에 붕어빵 굽는 속도를 높여 따끈한 것들을.. 2015. 12. 20.
또 들깨 들깨수제비를 먹었다.들깨같은 인간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들깨가 흑임자는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들깨를 먹으면서는 웃을 수도 있으니까.그때는 들깨가 흑임잔 줄 알았다. ㅡ151214 2015.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