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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126

어머니와 시인 오늘이 음력으로 어머니 생신이다. 며칠 전에 생신기념으로 볶음밥을 해드렸는데(아니, 생신상에 얹어드렸는데), 그렇게 지나가는 건 절대 아닌 것 같아서, 오늘 다시 작게나마 내가 직접 준비해드리기로 했다. 난생 처음 미역국 시도. 찬장에 들어있던 미역을 물에 불려 놓고, 집 앞 마트에 가서 국거리 소고기(맛있는 부위라며 준 것이 치맛살)를 반 근 사왔다. 냄비에 식용유를 두르고 소고기와 붇은 미역을 한참 볶은 후, 물을 넣고 삼십여 분 끓이다가,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보면 끝! 이 쉬운 게 무슨 대수라고 삼십 년 동안 안했는지. 한 냄비 끓여 놓고 나니, 내심 뿌듯하다. 국 다 만들고 부리나케 자전거 타고 꽃집으로. 꽃집은 이제 낯설지 않다. 장미와 안개꽃으로 묶인 꽃다발을 사서 식탁에 올려두었다. 죄송.. 2015. 10. 16.
볼링 볼링을 쳤다. 그런데 볼링을 왜 '친다'고 하는 건지. 볼링은 '하는' 게 아닌가. 이건 마치 '축구를 찼다'와 같은데. 아마도 볼링공으로 핀들을 치기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테니스도 친다고 하고 탁구도 친다고 하는데, 그것들은 채 따위로 공 따위를 치는 운동들이네. 그러면 볼링은 '친다'보다는 '한다'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굴린다'는 아닌 것 같고. 아무튼 bowling을 play 했다. 볼링장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치열하고 살벌하게 경쟁하는 분위기라기보다 깔깔깔 웃고 떠드는 분위기. 승부라 해봤자 음료수 내기 정도의 가벼운 대결. 상대방을 이기려고 악을 쓴다기 보다, 내 점수 기록을 경신하는 데 더 집중하는 종목. 그래서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매우 드문 매너 있는.. 2015. 9. 29.
여유 서울에서 천 원으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여유로운 여유. 여전히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눈에는 나무와 들풀만이 들어온다.적당한 북적거림. 바람 맞으며 피곤한 눈과 귀 정화. 대신 다리는. 150920덕수궁, 서울 2015. 9. 21.
노느다 이거 가져다가 노나 먹어라들. 연세 지긋한 노인 분들께서 사탕 한 움큼 쥐어주시며 하시는 말씀이다. '노나 먹으라'는 표현을 들으며, 나는 어른들의 유머가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했었다. '나눠'를 '노나'라니, 일상의 말 속에 깨알 같은 재미라 할까. 억지로 비교하자면 통기레쓰 같은. 거꾸로 말하기는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알아서 예방하고 계셨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단어 공부를 하던 중에 충격적인 발견을 했다. 노느다 〔노나, 노느니〕 「동사」 【(…과) …을】【…을 …으로】((‘…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여러 몫으로 갈라 나누다. '노느다'란 말이 있을 줄이야. 역시 알수록 어려운 국어의 세계. 점점 사라져 가는 말들. 왠지 아련하구나. 2015. 7. 30.
어른의 안부 어른을 한참을 피해 다녔다. 그것도 제일 큰 어른을. 눈이 좋아 멀리서 그 어른이 보이기만 하면 멀찌감치 돌아갔다. 화장실에 들어가다가도 그의 뒷모습이 보이면 차오르는 배를 부여잡고 도로 나올 지경이었다. 어른을 스쳐가는 것만도 어려운데, 한번 마주쳤다하면 직면을 해야하니, 애써 피했던 것. 전에 두어 번 길게 직면하고 나서 더 겁이 났다. 어른의 '그 말씀'을 차마 따를 수가 없었고, 그 따를 수 없음을 소신 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어 어영부영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고. 그 넘어간 게 민망하고 그것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하여 더 무섭고, 그랬다. 아무튼 피했다.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은 인사도 쭈뼛거리며 병자같이 하다가, 이건 정말 꼴보기 싫겠다 싶어, 얼.. 2015. 7. 27.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하셨거늘, 한낱 들꽃도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다는데. 설마 무엇을 입어야할 지 고민ㅡ고민까지는 아니고 의식ㅡ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 누군가 그랬었지. 학교 다니면서 한 청바지만 하도 입고 다녀 나중에 벗었더니 바지가 꼿꼿이 섰다는. 이 참에 단벌 신사가 돼야겠어. 그 염려에 쏟을 여력이 없다. 2015. 7. 10.
안개꽃 꽃집에 들러 꽃을 샀다. 그녀는 길 가다 꽃을 보면 이따금 갖고 싶다 말하곤 했는데, 이제야 샀다. 사실 꽃집에 갈 때마다 다소 주눅이 들곤 하였다.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는 건, 여자 속옷 가게에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꽃에 대해서 워낙 모르기도 하여 주인이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하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꽤나 당황스럽기도 하고. 쭈뼛거리며 꽃집에 들어서서 무얼 살까 둘러보는데, 전에 그녀가 무심코 안개꽃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 자신 있게 안개꽃을 달라고 주인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주인이 가리키는 온실 안을 보니 평범한 흰 안개꽃 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주인의 추천을 기대해야 하나 고민하다 무심코 탁자 위에 놓인 분홍빛 안개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다 싶어 별 .. 2015. 6. 27.
당연한 것 1. 엄마가 할머니가 됐다. 손자 이야기라면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다. 무표정한 아기를 안은 채 엄마는 시종 웃는 얼굴로 묻고 답하고, 울기라도 하면 어르고 달래고. 손자가 찍힌 영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본 것 또 보면서도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우리 할머니도 나를 보며 저러셨을까. 2.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할머니였다. 친할머니가 나 태어나기 전 일찍이 돌아가신 것도 이유였지만, 외할머니의 '외'자가 이제 막 말 배우는 나에게는 쓰기에 그리고 발음하기에 너무 어려웠다. 오할머니, 오할아버지. 그래서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할머니였다 나의 할머니는 언제나 '웃는 할머니'였다. 명절 때마다 시골 외갓집에 갈 때면, 대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할머니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똥강아지 왔는가.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2015. 4. 21.
감정 단어 모음 ------------------------------------------------------------------------------------------------------------------------------------------------------------------------------------------------------------------------ 기쁨(喜)감격스러운, 감동적인, 감사한, 고마운, 고무적인, 기쁜, 낙천적인, 날아갈 듯한, 놀라운, 눈물겨운, 든든한, 만족스러운, 뭉클한, 반가운, 벅찬, 뿌듯한, 살맛나는, 시원한, 싱그러운, 좋은, 짜릿한, 쾌적한, 통쾌한, 포근한, 푸근한, 행복한, 환상적인, 후련한, 흐뭇한, 흔쾌한, 흥분된 노여움(怒)가혹한, .. 2015.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