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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

안개꽃

by 새 타작기 2015. 6. 27.















집에 들러 꽃을 샀다.


그녀는 길 가다 꽃을 보면 이따금 갖고 싶다 말하곤 했는데, 이제야 샀다. 사실 꽃집에 갈 때마다 다소 주눅이 들곤 하였다.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는 건, 여자 속옷 가게에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꽃에 대해서 워낙 모르기도 하여 주인이 '찾으시는 꽃 있으세요?'하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꽤나 당황스럽기도 하고. 쭈뼛거리며 꽃집에 들어서서 무얼 살까 둘러보는데, 전에 그녀가 무심코 안개꽃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 자신 있게 안개꽃을 달라고 주인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주인이 가리키는 온실 안을 보니 평범한 흰 안개꽃 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주인의 추천을 기대해야 하나 고민하다 무심코 탁자 위에 놓인 분홍빛 안개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다 싶어 별 고민 없이 값을 지불하고 그 꽃다발을 집었다.


그녀의 회사까지 지하철로 대략 스무 정거장. 꽃다발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건 우려만큼 창피하진 않았다. 꽃집에 들어설 때의 우물쭈물함이 단순히 꽃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음이 새삼 깨달아지고. 자리에 앉아 꽃을 유심히 보았다. 보다 보니 더욱 볼 만했고, 꽃다발이 묘하게 우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가 큰 꽃들이 주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수수한 매력이 있었다. 안개꽃은 대개 화려한 꽃들의 곁에서 감싸주어 화려함을 더해주지 않았던가. 조연의 인생을 살던 것이 주연의 자리에 서니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의외로 안개꽃만으로 이루어진 꽃묶음은 다른 꽃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은은함이 있었다. 꽃은 채도가 높지 않은 세 가지 분홍빛으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ㅡ분홍의 영문 표기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는 몰랐지만, 찾아본 결과 굳이 따지자면, 로즈 핑크, 쉬림프 핑크, 베이비 핑크에 가까웠던 것 같다ㅡ 장미처럼 열정적이지도, 수선화처럼 탐스럽지도 않지만, 그 '튀지 않음'이 밉지 않다. 꽃을 싼 누런 갱지도, 살짝 말라 팝콘처럼 건조해진 그 느낌도.


그녀는 꽃을 받고 수줍게 좋아했다. 민망하였는지 소극적으로 몇 발자국 들고 가다 적극적으로 가방에 넣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주지 못하고 꽃으로 떼운 나의 부족함을 고맙게 받아주었는데. 마음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성공할 것만 같았다ㅡ고 말하면 웃기고, 성공하고 싶어졌다, 더ㅡ 안개꽃의 꽃말이 '맑은 마음, 사랑의 성공'이어서만은 아니다.


아무튼 축하해요, 2주년을.


P.S 마지막에 도치법을 쓴 이유. 왠지 '도치'라는 말도 써넣어야 할 것 같았다, 이 날에.


150615




(이것은 며칠 후에 찍은 사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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