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들126 바람직한 뉴스 할아버지가 얼마전 돌잡이로 청진기(약탕기였나?)를 잡은 손자에게 진지하게 하시는 말씀이, "딴 거 되지 말고 의사 돼라. 그래야 구속 안 된다." 앞말은 그럭저럭 칭찬인 것 같은데, 뒷말이 엉뚱하다. 구속이 안 된다니. 의사가 어떻길래. 우연인지 몰라도, 이날따라 뉴스에는 의사준비생이 나왔고, 우연인지 몰라도, 그 전도유망한 사람이 지하철에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138여 회나 도촬을 했다는, 한국에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이 뒤따랐고, 그 의사준비생의 변호인은 그건 고의도 아니고 우발적이기 때문에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게 나온 것 같았고, 그런 일은 천번이고 만번이고 우발이 가능한 나라(겨우 138번 가지고 호들갑은.)에서는 정말 별 일 아니기 때문에 재판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대수롭지 않은 마무.. 2015. 12. 21. 붕어빵, 팥, 시간 붕어빵아줌마 : "지금 몇 시에요? 한 여섯 시쯤 됐어요?"나 : "여섯시 반 조금 지났어요." 붕어빵아줌마 : "어유, 생각보다 이르네. 이거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라요. 난 재료 가져온 거 다 쓰면 집에 가는 거에요." 저마다 시간을 재는 방식이 있다. 붕어빵아줌마의 측정도구는, 붕어빵 속에 들어갈 팥 앙금 한 통이었다. 날마다 약간의 오차야 있었겠지만, 아줌마는 긴 세월 한 곳에서 같은 양의 붕어빵을 팔다보니, 팥이 이 정도 남았으면 몇 시쯤 됐겠구나, 어림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붕어빵 굽는 틀이 돌아가는 모양으로는 작은 단위의 시차를, 특정 손님의 방문으로는 특정 시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서 학교 종소리가 울리면 고사리들이 몰려들기 전에 붕어빵 굽는 속도를 높여 따끈한 것들을.. 2015. 12. 20. 또 들깨 들깨수제비를 먹었다.들깨같은 인간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들깨가 흑임자는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들깨를 먹으면서는 웃을 수도 있으니까.그때는 들깨가 흑임잔 줄 알았다. ㅡ151214 2015. 12. 15. 별꼴이야 다른 셀의 시끌벅적함이 어색해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는 말이 미안하고, 또래모임보다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는 말이 고맙다. 나는 최대한 들어주고 싶었고, 말을 계속 하고 싶게끔 묻고 싶었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싶었다.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ㅡ151206 별꼴이야,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 2015. 12. 8. 김장 순이 아줌마가 그러는데, 김장날만 되면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식구들이 죄 없어진단다. 엄마가 그러는데, 혼자서 김장을 할라치면 시작부터 신경질이 나고, 하다보면 이사처럼 재미없단다. 거침없는 친구에 힘입어 드러난 엄마의 속내. 이른 아침부터 무채 써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부엌에 나가보니 이미 엄마는 그 재미없는 김장을 시작했다. 엄마 뒷모습을 보는데, 엄마한테 필요한 건, '같이 있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설픈 솜씨로 김장을 망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엄마 옆에 붙었다. 엄마가 썰던 걸 이어받아 무채를 썰고, 속 버무릴 때 엄마의 지시에 따라 갖은 양념을 들이붓고, 그렇게 버무려진 속을 절인 배추 속에 넣었다. 서른 포기를 담그는 동안, 재미없는 게 ㅡ오죽 재미없으면 이사만큼이라니ㅡ.. 2015. 12. 6. 기다리는 것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다.물론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지.있는 티 없는 티 다 내는 거다.다만 제자리에서. * 사랑할 줄 모르는 교사와 제법 사랑할 줄 아는 제자가 사랑 얘기를 했다. ㅡ151204, 신촌 스타벅스, 황군과. 2015. 12. 5. 맥도날드 최근 집 앞에 24시간 맥도날드가 생겼다. 이 층에서는 경인국도가 내려다보인다. 넓고 조용하고 냄새가 안 나고 무엇보다 커플들이 잘 안 온다. 제법 마음에 드는데 제발 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거기 갈 때마다 먹는 맥도날드 원두커피 미디움사이즈와 천 오백원짜리 츄러스의 도합 삼천 원의 '환상적인' 미친 조합. 한기만 있으면 내복을 두 겹으로 입고 겨울만 되면 여름 생각을 하던 나지만, '이 조합'이면 난 겨울을 좋아할 수 있다. ㅡ151202 2015. 12. 4. 눈 캄캄한 방 안에서 세상 모르고 자는 사이밖은 이미 다른 세상.이만큼 쌓이도록 어째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지.눈이 오면 개처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과쓸고 쓸어도 쌓이는 눈에 기겁을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시간이 지났는지 다시 눈이 좋아지기도 하네.정수리가 하얗도록 털지도 않고 우산도 없이 다니는 사람들 보면, 역시눈에는 비에 없는 묘한 '상기'가. ㅡ151203 2015. 12. 4. 나와 나 '나'와 '그것'이'나'와 '너'가 되려면,우선 '나'와 '나'즉 '나'와 '그분'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나'는 '그분' 안에서 온전할 수 있으므로. 고맙습니다. * 오는지도 모르게 첫눈처럼 내려와기다려준 것도 고맙습니다. ㅡ151126 2015. 11. 26.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