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들/오늘의120 반찬 오전에반차냈어요. 뭐했다고? 반차냈다고요. 반찬했다고? 반.차.냈.다.고.요. 아. 여기서 은근한 스타카토 화법을 쓴 싸가지 없는 난 도대체 뭔가. 아버지가 반차를 내든 반찬을 하든 하나도 관심없는 주제에. 2017. 4. 6. 섬 출근길에 본 일. 바쁘게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속에 마대자루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던 청소아주머니.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언제나 손목에 반동을 쳐 가며 역동적으로 전단지를 나누어주시던 아주머니. 역시나 허공에 멍하니 시선을 둔 채 전단지 주는 일을 멈추고 서 있었다. 움직여야 할 것이 움직이지 않을 때 압도적인 고독을 느꼈다. 무리는 지나간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정말. 2017. 3. 25. 다물어 입 귀는 무겁고 입은 가벼운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탓해 뭐해.애당초 내 입이 가벼웠던 게지.따뜻한 기류의 사람들 눈에는모든 게 따뜻해 보이기 마련.이상기류도 잠깐 흔들리다 말, 마치 꽤 귀여운 요동.개화 소식 전하듯 동네방네 화사하게 터뜨리지만, 그곳은 아직 음지. 냉랭. 현실.저 봉오리는 꽃 필 일 없는데 말야.망울만 한심하게 쳐다볼 뿐. 입을 다물게 된다. 2017. 3. 22. 이노무 인상 "있잖아, 그거. 돋보기를 햇빛에 쬐면 불타는 느낌" 모니터를 응시하는 내 눈빛이 이렇답니다. 그렇게 내 모니터는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간 펴지지가 않네요. 이노무 인상. ㅡ170120 2017. 1. 20. 설렁탕 주인 잘못 만난 몸뚱이에 혼밥 사상 최고액의 설렁탕을 선물했다. 아니지, 주인은 주님이지.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안식일인 오늘도 일을 합니다. 애쓰는 게 맞습니까? -170108 2017. 1. 8. 소원 느지막이 현관을 나서는 아들 뒤로 어머니 벽에 기대어 서서 사뭇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잠들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 보고 자는 게 소원이야. 어머니 소원이 이렇게 소박해졌다. 키워드리지는 못할 망정. 장개 가기 전에 실컷 봬 드려야 하는데. 내가 엄마 얼굴 보자고 죽자 살자 쫓아다녀도 모자를 판에. -170108 2017. 1. 8. 짱나 잠깐 나가 통화를 하고 오더니 한껏 찡그린 얼굴로, "아, 짱나......" 한없이 둔감한 나에겐 이해되지 않는 짜증.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바로 혀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동으로 살아내는 사람의 차이다. 그 사람은 함부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거다. 2016. 9. 6. 예상 못한 도서관에 K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이 왔다. 예상치 못한 K와 약속된 애인. 이럴 땐 이상하게 앞의 경우에 신경을 쏟게 된다 난. 애인의 자발적인 양보를 기대하면서. 미안할 따름. K와 한참을 놀아주다 보니 어느덧 도서관을 닫을 시간. 부랴부랴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그제서야 짬을 내어 애인과 말을 섞는다. 손걸레는 저기에 있고, 의자는 모조리 올려줘, 류의 대화. 미안할 따름. 도서관을 나서며 K를 위해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나와 K가 나란히, 애인은 서너발자국 떨어진 뒤에서. 한 이십 분 걸었나, 버스정류장을 한 블럭 앞둔 횡단보도에서 K가 갑자기 나와 애인의 손을 덥썩 잡더니 둘을 포개어 놓는다. 거리를 두고 쫓아오던 애인이 못내 안쓰러웠는지 "여기부터 손 잡고 가셔요" 한다. 또, 양손.. 2016. 9. 4. 세탁기소리 한여름에 웬 감기. 노곤한 몸으로 씻지도 않고 방바닥에 누웠는데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정한 기계음 뒤에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마치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에 누운 듯, 하마터면 깜빡 잠이 들 뻔했다. 섬집 아기가 된 기분. 2016. 8. 5. 이전 1 2 3 4 5 6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