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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

난쟁이

by 새 타작기 2015. 12. 27.
키가 아주 작은 아저씨가 지하철에 탔다. 보통 작은 게 아니라 난쟁이다. 나는 뒤뚱거리며 계단을 내리던 아저씨를 성큼성큼 지나쳐, 진작에 지하철에 타 좌석에 앉아있는데, 아저씨는 한참 후에 문이 닫히기 직전에나 겨우 지하철에 올라탄다.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자리에 앉은 내 엉덩이가 움찔하는데, 다행히도 아저씨는 저 멀리 노약자 좌석으로 간다.

아저씨는 두 손으로 의자를 딛고 점프하듯 올라 타 자리에 앉는다. 앉아 있는 아저씨의 두 다리는 꼬마처럼 앞으로 쭉 뻗어 노란색 신발의 밑창이 다 보인다. 아저씨의 얼굴을 봤다. 미남형이었다. 여느 아저씨들처럼 머리가 희끗거리고 얼굴에 검게 세월이 묻어 있었지만, 푸근함을 주는 좋은 인상이었다. 아저씨가 계속 신경쓰여 자꾸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볼때마다 아저씨는 깊고 복잡한 표정으로 곧게 앉아있었다.

합정역에서 아저씨가 내렸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걸어가며 공중의 전광판을 보는데 다른 사람보다 고개가 한참이나 더 젖혀진다. 아저씨는 방향을 확인했는지 가던 쪽으로 쭉 걸어갔고, 지하철 문은 퓩ㅡ하며 닫혔다.

왜 계속 아저씨를 쳐다봤을까. 그 시선에 나쁜 것이 들어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저씨의 지난 삶은 어땠을까 잠깐동안 감히 생각해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저 아저씨를 보면서 아버지가 떠오르기는 했다.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ㅡ151227 2호선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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