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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

볼링

by 새 타작기 2015. 9. 29.

볼링을 쳤다.


그런데 볼링을 왜 '친다'고 하는 건지. 볼링은 '하는' 게 아닌가. 이건 마치 '축구를 찼다'와 같은데. 아마도 볼링공으로 핀들을 치기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테니스도 친다고 하고 탁구도 친다고 하는데, 그것들은 채 따위로 공 따위를 치는 운동들이네. 그러면 볼링은 '친다'보다는 '한다'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굴린다'는 아닌 것 같고. 아무튼 bowling을 play 했다.


볼링장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치열하고 살벌하게 경쟁하는 분위기라기보다 깔깔깔 웃고 떠드는 분위기. 승부라 해봤자 음료수 내기 정도의 가벼운 대결. 상대방을 이기려고 악을 쓴다기 보다, 내 점수 기록을 경신하는 데 더 집중하는 종목. 그래서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매우 드문 매너 있는 스포츠. 볼링장에 들어오니 한껏 마음이 들뜬다. 신발을 대여하고 볼링공을 고르고서 카운터 직원에게 부탁하여 가장 사람들 신경 쓰이지 않는 왼쪽 가장자리 1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육상에서도 가장 못하는 사람들이 1번 레인에서 뛰지 않던가. 4번 레인에서 뛰면 양 옆에 사람들 신경 쓰느라 백 점 나올 것도 오십 점 나온다.


9파운드 공을 들고 레인 앞에 섰다. 설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여기서 신경 써야 할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옆 사람이랑 동시에 공 굴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데, 옆 사람과 지그재그의 타이밍으로 공을 던져야 하고, 레인 위에 그려진 화살표도 바라봐야 하고, 왼쪽 발과 오른쪽 발 중 어느 쪽을 먼저 내딛어야 하는지 고민도 해야 하고, 왼쪽 팔은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오른쪽 팔은 뒤로 얼마나 젖혀야 하는지, 공 던지는 순간은 어딜 봐야 하는지, 손목은, 고개는, 엉덩이는... 무엇보다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공을 던지고 나서 돌아올 때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결국 민망하니 머리매무새만 계속 다듬어 댄다. 앉아 있을 때는 볼링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본다. 동호회인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몇몇 커플들과, 부부로 보이지는 않는 지긋한 노년 한 쌍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열심히 볼링공을 던지고 있다. 이 사람들도 가만 보니 참 재미있다. 나랑 똑같이 어찌나 주변을 의식하는지, 마치 런웨이 위의 모델들 같다. 모델이 런웨이를 걸을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그것처럼 레인 위에서 그 짧지만 어색한 시간을 한 판에 스무 번 남짓 나름 즐기며 견뎌 내고 있는 것이다. 웃기는 착각들이다.


하면 할수록 반드시 반듯이 가운데로 굴려야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긴다. 그러다보면 움츠러들고 무언가 시원한 느낌이 안 든다. 굴려진 공도 넘어가는 핀도 맥이 없다. '개갈 안 난다'고 할까. 간만에 왔는데 점수가 뭔 필요냐, 스트레스나 풀고 가자는 생각이 든다. 소매를 한껏 올려붙이고 공을 다부지게 잡아 본다. 그리고 레인을 냅다 달려 공을 힘껏 후린다. 폼은 말짱 꽝, 공은 우당탕하고 떨어져 순식간에 핀들을 바순다. 카랑쾅쾅. 속이 다 후련하다. 이렇게 돌팔매하듯 공을 던져 다섯에 하나 제대로 들어갔던가. 캐치볼 처음 배울 때 땅에 머리를 박고 던져도 공은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느낌, 쾌감.


앞으로 볼링은 무조건 이렇게 한다. 오늘은 7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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