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한참을 피해 다녔다. 그것도 제일 큰 어른을. 눈이 좋아 멀리서 그 어른이 보이기만 하면 멀찌감치 돌아갔다. 화장실에 들어가다가도 그의 뒷모습이 보이면 차오르는 배를 부여잡고 도로 나올 지경이었다. 어른을 스쳐가는 것만도 어려운데, 한번 마주쳤다하면 직면을 해야하니, 애써 피했던 것.
전에 두어 번 길게 직면하고 나서 더 겁이 났다. 어른의 '그 말씀'을 차마 따를 수가 없었고, 그 따를 수 없음을 소신 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어 어영부영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고. 그 넘어간 게 민망하고 그것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하여 더 무섭고, 그랬다. 아무튼 피했다.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은 인사도 쭈뼛거리며 병자같이 하다가, 이건 정말 꼴보기 싫겠다 싶어, 얼마 전부터 당당한 척 인사하기는 했다. 오늘도 그런 척 인사하고 역시나 급히 도망가는데, 어른이 따라오신다. 따라오시는 게 느껴져서 당황스러웠지만 또 겁쟁이 같을까봐 태연한 척을 했다. 의자에 앉았더니 어른도 의자에 앉았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오셔서 내 앞에 앉았다.
요새 어떻게 지내?
난 지금, 내게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도 싫고, 나를 궁금해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서운해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이중적인 이상한 상태였는데 어른이 담백하게 안부를 묻는다. 깊지도 얕지도 않게. 꼼수부릴 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 이러저러하다고 말씀드렸다. 몇마디 들으시더니 몇마디 힘겹게 꺼내어 주신다. 내가 지금 느낄 답답함에 대한 공감도, 이삼년을 돌아온 것 같다는 아쉬움도,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격려도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하시고 싶은 말씀도 많았을 텐데 꾹꾹 누르시며 참으시는 게 느껴져서 감사했고, 이전 것보다는 다가올 일을 현실적으로 염려ㅡ막연한 청사진이 아닌ㅡ해주셔서 감사했다. 나의 근황이 여전히 못마땅하셨을 텐데......
다른 이들에게 모범사례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신다. 무슨 뜻인지는 말씀을 듣는 그 순간에도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냥 힘이 난다. 불편했던 마음의 짐을 슬쩍 한꺼풀 벗겨주신 그 '무심한 관심'에, 이제 나는 당당하게 화장실도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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