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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소설

「김 박사는 누구인가」 : 기원

by 새 타작기 2015. 4. 18.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저자
이기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3-04-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자리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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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가 왜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왜 그랬는지 나조차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있다. 그것들의 원인을 아무리 복기해보아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는데, 그것들은 대개 '나쁜' 것들이어서 오랫동안 찝찝하게 잔향으로 남는다. 내게 남아 있는 좋은 것들은 왠지 유전의 흐름을 거스른 나의 노력의 결과인 것만 같고, 나쁜 것들은 부모가 남긴 불순물들이 ㅡ부모 자신들도 해결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버린 것들이ㅡ 나에게 퇴적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래서 원망하는 마음으로, 내 어린 시절로 그것들의 기원을 찾아나선다.

막상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그것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아서, 찾으면 찾아질 것만 같다. (찾아낸 것이 기원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짓을 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도록 자라 온 지난 날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숨 죽이고 벌벌 떨고 있는 어린애. 아무 소리 내지 못하고 아버지의 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옳지, 저 대목이구나. 저때부터 나는 저랬구나. 움크린 저 가슴 속에 알아채지 못할만큼 난폭함이 자라왔구나. 찾으면 찾아진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인가 뭐시기인가, 저 깊은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무의식의 빙산을 탐험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기억할 수 있는 수면 위의 의식만 추적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 기원을 찾아냈다고 하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프로이트는 뭐라고 했었지.

아버지, 그때 왜 그러셨어요?
어머니, 나 그렇게 될 동안 왜 안 말리셨어요?

이렇게 따지면 되는 건가? 엉킨 것이 덜 풀렸더라도 그냥 이렇게 저렇게 익숙해진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굳이. 기억은 나더라도 그때의 감정은 잘 봉인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굳이. 굳이 수면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봉인된 감정을 풀어 헤쳐야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것들이 설명되고 교정되고 치료되는가. 안타깝게도 나에게 불순물만 물려주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이미 가슴속에 더 더러운 것ㅡ그들도 누군가에게 물려받았을ㅡ들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그것을 차마 물려줄 수 없어 정화하고 정화했지만 미처 정화되지 못한 것들이 나에게 쌓였다고 해야 하나. 나의 기원을 누군가에게서 찾아낸다고 해도, 그들로부터 치유받을 생각은 그만두는 것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저마다의 불순물들을 감당하기에 힘겨운 사람들이기에. 그리고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좋은 기원이고자.

최 양은 그냥, 옥상에 올라가서 욕 한번 시원하게 내질렀으면 좋았으련만.

 

 

# 기원이고 뭐고, 쉽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결국 나의 문제 아닌가.

 

 

「김 박사는 누구인가?」,『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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