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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소설

「엇박자 D」 : 그들도 노래를 제대로 부른다

by 새 타작기 2015. 2. 20.


악기들의 도서관

저자
김중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4-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라진 음악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김중혁 두번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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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 : [명사] 소리에 대한 음악적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음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발성하지 못하는 사람. (네이버 사전)


음치. 누가 이렇게 정의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래를 제대로 ('제대로'를 누가 그렇게 정의했는지 모르겠지만) 부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부르는 사람은 제대로 부르고 있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들리지 못하는 노래. 음치의 정의를 '부르는 사람'이 내렸는지, '듣는 사람'이 내렸는지, 왠지 알 것도 같다. 어쨌거나,  본인의 개성대로 -그것이 약간의 엇박자에 어색한 높낮이의 음정일지라도- 노래를 부른 것 뿐인데, 듣는 사람들이 그 개성을 개성이라 하지 않고, 엉망진창 소음으로 여기며, 음치라 하니. 결국 음치다, 음치다 하는 세뇌 속에 부르는 사람들은 점점 입을 다물어갔던 것. 제 기준에 제대로 부른 것 뿐인데.


소설을 보면, 음치들은 생각보다 노래를 좋아한다. 자진하여 단장을 맡을 정도로 합창단 활동에 열성적이고, 여느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취미이며,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무대에 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다만 '그 노래'를 싫어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잘 표출하지 않았을 뿐.


엇박자 D, 그 역시 그 좋아했던 노래를 한동안 억눌렀다. 사람들의 조롱 속에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축제일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음악선생에게 뺨따귀를 후려 맞았는데 어찌 노래가 나올까), 노래도 듣지 않고, 의식적으로 귀를 닫았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소리도 없는 무성영화를 통해 소리를 듣게 되고, 다시금 귀를 열게 되고, 비로소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음치다, 음치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무성영화가 엇박자 D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을까? '소리 없음'의 답답함? 세상의 모든 소리는 아름답다는 메시지?) 그리고 더이상 자신은 음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제대로> 공연을 기획하고, 급기야 음치들을 -비록 무대에 오른 것은 리믹스된 목소리 뿐이었지만- 무대에 올리기에 이른다.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280p)


엇박자 세상을 뒤집기 위해 우리의 음악도 엇박자. (251p)


음치들이 보여준 것은 비단 자신감 뿐만이 아니었다. 음치들이 제 노래를 제대로 부를 때, 또 그 노래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조화를 이룬 그것일 때는 제법 제대로 된 노래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기네들을 '틀리게' 보는 엇박자 세상을 뒤집기 위해, 한껏 모으고 모아 세상을 향해 날리는 통쾌한 엇박자 공연이랄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몇몇 관객은 후렴을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1절이 끝나자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명이 켜졌다. 더블더빙이 <오늘 나는 고백을 하고>의 간주를 연주했고,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몇몇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 브라보를 외쳤다. (280p)


주변을 둘러보면 분명히 내 옆에도 엇박자 D들이 있다. 뺨따귀를 후려올린 선생처럼 그들을 대하지 않았음에 안도하지 말기를. 어쩌면 엇박자 D 홀로 무대에 남겨두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것이 그들의 귀와 입을 닫게 했을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수도 있으니. 틀리게 보지 말고 소외시키지 말자는 것, 그들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들어 주자는 것이다. 정성스런 연주로 음치들의 노래 사이를 메워 준 더블더빙과 웃지 않고 그들의 노래를 노래로 받아들여준 관객들처럼.



「엇박자 D」,『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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