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점퍼를 입고 후드모자를 푹 눌러 쓴 학생이 우리집 앞을 기웃거린다면. (우리집 앞을 기웃거린다는 것도 물론 내 추측이겠지만. 학생이 기웃거리는 곳이 마침 우리집의 앞일 뿐이지, 우리집이라서 거기 있는 건 아닐 테니. 기웃거린다는 표현도 섣부를 수도. 학생은 우리 집에 어떠한 목적도 없을 수 있으니) 문득 드는 생각은, 분명 좋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소설 속의 1705호 식구들의 생각도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학생이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보고. 물론 학생이 피우고 버린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저 몰래 숨어 담배나 피우고 가는 녀석일거다, 밖에 세워 둔 우리 자전거가 잘 있는지부터 보자, 혹시 이 단지에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며 인터넷에 쳐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의심의 눈으로 학생을 바라보는 사이, 학생은 이제야 열린 옥상을 통해 결단을 내리고 만다.
아마도 학생의 죽음도 이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했으리라. 좋지 못한 소문으로 인해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만 가득할테니.
학생이 거기에 서성거릴 때, 혹시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물어봐주었다면. 학생은 옥상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 전에 더 이상 아파트를 찾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시 넌 누구니" 혹은 "밥은 먹었니"
자신을 지나치면서도 그 쉬운 물음 한번 건네지 않던 사람들을 보며 학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던 결단을 어쩔 수 없이 마음 속에 키워갔던 것은 아닐까. 인정 받고 싶고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 사소하면서 당연한 마음.
「1705호」,『관계의 온도』, 이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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