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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소설

「이인실」 : 참는데 이골이 난

by 새 타작기 2016. 2. 26.

거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무엇이든 참지 못하는) 아버지의 이기적인 푸념을 한참 듣던 (참는 데는 이골이 난) 엄마는, 아버지가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가자, 한참 지나서 내게 속내를 꺼냈다. 불현듯 리모컨을 티브이에 던지면 티브이가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고 했다. 본인이 그런 충동이 들었다는 것에 너무 놀랐고, 이래서 사람들이 홧김에 사고를 저지르게 되는 건가고 사뭇 깨달아졌단다. 엄마는 그런 충동을 누르고 누르다 이번에 터뜨리지 않으면 울화가 치밀 것만 같아 리모컨을 던졌다. 티브이에는 아니고 바닥에. 그마저도 차마 선을 넘지 못하는 절제된 강도로, 겨우. 얼마나 박살내고 싶었을까. 티브이도 아버지도.

난 엄마가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속으로 쌓아만 가는 게 걱정된다고 했다. 그 말에 엄마는 잠깐 침묵하더니, 이제는 참는 게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이 괜찮은 게 아닌 걸 당연히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에, 이후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내 한숨만. 엄마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


93 "내 부산에서 최고간다 카는 의사들 일렬로 쪼리리 세워놓고 귀싸대기를 한 대 씩 돌릴라 카다 온 사람이요.

94 철주는 그가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 할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95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먼저 망가지듯 먼 옛날의 아름다움을 희미하게 암시하는 눈매 빼고는, 무너진 성터 같은 그녀의 얼굴에서 성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그렇게 망가뜨린 게 세월이든 남편이든...

100 그는 공항에서 병원까지 타고 온 앰뷸런스에서 내려서는 환자를 태우고 운전을 천천히, 똑바로 하지 않는다고 운전기사와 남자 간호조무사, 이어서 무슨 일인가 고개를 기웃거리는 수위를 포함해서 십여 명을 세워놓은 채 병원 앞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미 보여주었다.

100 이를테면 입원실이 없다고 값비싼 일인실에 입원을 시켰다가 장기 입원이 될 것 같으니까 병실을 옮겨주긴 했으되 기본 입원비가 드는 육인실도 아닌 이인실로 병실을 옮겨주어도 감지덕지하면서 수술이나 수술후의 처치 잘못에 대해 더 추궁하려고 하지 않는 철주 같은 사람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101 장택근은 거의 없는 경우를 십분 자기 것으로 만든 특별한 환자인 것이다.

102 철주의 아내는 의사를 만나면 고름에 대해 단단히 따지겠다고 밤새 별렀으나 막상 그들이 떼지은 독수리처럼 바람 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겁먹은 암탉이라도 된 듯 입도 달싹하지 못했다. 그들이 병실을 빠져나가고 난 다음 따라나가 애원을 하다시피 물어서 들은 말이 '기다려보자'였다.

102 하여튼 철주는 참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103 장택근과 비교하면 자신은 너무 무능하고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105 무엇이든 참지 못하는 사내

109 철주는 그녀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참기만 해온 사람들끼리 서로 알 수 있는 그런 느낌

111 철주는 그 순간 그녀가 자신에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생각했다.

112 "누가 내 말을 들은 적이나 있어? 너도, 네 아빠도, 네 고모도 다, 다, 다! 이젠 마음대로 해봐! 다 잘해봐요!" 


ㅡ「이인실」,『조동관 약전』,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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