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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소설

「성탄특선」 : 의식주

by 새 타작기 2015. 12. 4.

아직은 아니지만, 12월이 되면, 거리엔 캐럴이 울려대고, 가로수엔 화려한 조명이 치렁치렁 달릴 것이다. 성탄절은 하루라지만, 성탄을 축하하는 기분은 한 달 내내 이어진다.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도 (솔직히, '알 게 뭐야' 아닐까?) 누구든지 왠지 모르게 한껏 들뜰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들. 모두가 즐거워야할 때.


크리스마스. 특별한 날. 정확히는 이브가 더 특별한 날. (왜 특별하냐고? 솔직히, 알 게 뭐야) 이날만큼은 나를 뽐내고 싶지만, 아무리 옷장을 헤집어봐도 저 많은 옷들 중에 나를 예뻐보이게 할 옷은 없다. 옷이 없어 투덜거리면서도, 남들처럼 왠지 영화 한 편은 봐줘야 할 것 같고, 이날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평소 잘 가지 못하던 패밀리레스토랑 정도는 가줘야 할 것 같다. 손에 리본 달린 선물 하나씩은 기본이고. 그리고 이날따라 왜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건지. 별다른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남들이 특별하다고 하는 이 밤을, 그냥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별다른 의도가 없어도 응큼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꾸밀)옷이 없고, (먹고 마실)돈이 없고, (쉴ㅡ'쉬었다 가시게요?'할 때의 '쉼'ㅡ) 방이 없어, 크리스마스를 우울하게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다들 모르겠지. (그러니까, 도대체 알 게 뭐냐고!) 그날은 바로, 옷 없고, 돈 없고, 방 없는 연약한 사람들을 구원할 겸손한 자가 태어난 날인데 말야. 성탄절 전날의 모텔은 숙박비가 부르는 게 값이면서도, 없어서 못 구한다고 하는데, 그 시각에도 여전히 (몸에 걸칠) 옷이 없어 얼어 죽고, (빵 하나 사먹을) 돈이 없어 굶어 죽고, (제 몸뚱이 하나 누일) 방이 없어 길바닥에 널부러져 죽는다. 굳이 거리의 부랑자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많은 이에게 성탄은 일년 중 가장 먹먹한 하루. 모두가 즐거워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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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성가대 소년의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만 '바스락' 들려오는ㅡ 오늘은 일 년 중 가장 먹먹한 새벽을 만나는 날, 성탄절이다. 90쪽


멀리 구원처럼 빛나는 거대한 네온사인 하나가 보였다. LOVE. 네 채의 건물이 연결된 '러브' 모텔이었다. 99쪽


월세 부담이 컸지만 한 번쯤 '무리'라는 걸 모른 척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영화관이나 놀이 공원에서처럼 잠깐 동안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환상이라 하더라도, 이제 분수껏 사는 일은 지겨워져 버렸다고 떼를 쓰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103쪽


시간은 어느새 5시를 넘어가고, 산타 모자를 쓴 외다리 청년의 머리 위로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110쪽


ㅡ「성탄특선」, 『침이 고인다』,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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