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내 얘긴가 싶었다.
나도 '나'처럼 공시생이었다. 나도 공부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167쪽). '나'는 실패가 두려워 누군가에게 공무원 준비한다고 걸 숨겼다는데, 나는 실패가 두렵지 않았고 끈질기게 웬만큼 하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알리기도 했었다. 당장 취직하고 돈 벌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핑계가 되었던 것도 같다.
공부를 하다 보니 '나'처럼 어느 순간 나도 돈이 필요했다. 공부 첫 해에는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어 괜찮지만 해가 갈수록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가 아주 창피해진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168쪽) 과외나 할까하는 마음에 찾은 게 교육회사 간판을 단 한 회사였고 거기 들어가 자세히 보니 역시 과외전문업체였다. 교육의 질보다는 양을 따지는 '회사'였는데 그 회사는 점점 선생들에게 학습지도 팔게 하고 전화영어프로그램도 영업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거기서 잘 나가려면 홍삼원액도 팔아야 했다. 돈도 좋지만 나를 아끼고 싶었기에 (166쪽) 그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해야 할 공부시간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르칠 학생은 내가 찾아야 했다. 남이 찾아주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그 찾은 사람에게 첫 달 과외비를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했다. 역시 회사다. 막상 찾으려니 한 명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주로 내가 한 일은 입시생이 있을 법한 아파트의 게시판에 과외전단지를 붙이는 일. 그러려면 관리사무소에 내 생돈, 거금 삼만 원을 내야 했다. 전단지 붙이고 전화가 밀려올 것 같지만 아무 연락 없는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는 날이 부지기수. 그러다 단비같이 오는 문의전화에 내 목소리 톤은 몇 단이나 올라갔었다. 네, 네, 네, 학생의 부모가 묻는 말에는 무조건 네. 과외비를 깎아가면서도 네, 네, 네. 네,밖에는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다.(163쪽)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당신 자식 망치고 싶지 않으면 어머니는 제발 좀 뒤로 물러요, 부모가 보고 있는데 애가 공부 똑바로 하겠수, 따르기 싫으면 마쇼, 했어야 했는데, 네, 네, 네, 하면서 부모의 말을 무조건 수용. 돈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명의 학생을 만났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 가르치다가 어느 순간 이 일도 그만두었다. 인서울을 했을는지 서울의 바깥으로 나갔을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간 성적으로 보아, 90퍼센트가 그렇듯, 아마 바깥일 거다.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공무원이 아니다. 안되겠어서 과감히 포기했다. 다행히 길을 잃지는 않고 멈춰있지도 않고 내게 맞는 어딘가에서 잘 일하고 있다. 다만 '저녁이 있는 삶'은 아니어서 고되긴 한데 힘들지 않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래도 겉으로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런 건 당연히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176쪽).
입시생 과외해주면서 정작 자기 공부는 못 하고 있고, 돈은 벌어야겠어서 일은 놓을 수 없고, 돈을 벌다보니 돈이 주는 맛을 알게 되어 버렸고, 높은 페이에는 지나친 피곤이 따라(166쪽) 집에 가면 아무것도 못하고 스트레스 해소할 겸 온라인쇼핑으로 자신에게 보상을 해주고 있는 '나', 자식보다 더 열심이어서 차라리 직접 공부해서 수능 보면 인서울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지인 모친', 막연히 인서울을 꿈꾸지만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보이는 유아적인 인간 '지인'. 이중에 과연 누가 잘못인 거냐. 1부터 99까지 줄 세워 10퍼센트 안에 못 들어가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그저 모르는 길 어딘가에 멈춰(177쪽)설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가 잘못된 거냐. 인서울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177쪽)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도 아니어서 답답. 인서울 하면 삶이 또 아주 평탄하느냐, 그것도 아니어서 답답.
ㅡ「서울의 바깥」, 『창작과비평 2020 봄』, 박사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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