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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 서툶

by 새 타작기 2016. 5. 2.

정말로, 처음은 서툴 수밖에 없다. 필용은 바보같게라도 따져나봤지, 난 사랑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을 속절없이 보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너무 한낮'이었네, 시작도 끝도. 에고. 누가 볼 땐 애들 장난 같은 연애였지만, 그때의 사랑은 나름 진짜였고, 다만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서툴 뿐이었다. 양희의 사랑 없음도, 필용의 서툶도 이해한다.



사랑은 느닷없이 생길 수도, 단박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것도 아주 무덤덤하게 그리고 서툴게. 만약 서서히 생겼다가 점차 시들해지는 게 사랑이라면,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랑'이라는 관계는 지금보다 아마도 훨씬 다양하고 복잡했을 것. '사랑한다'와 '사랑하지 않는다' 사이에, '거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녀 사이에서의 사랑은 더더욱.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다. 어제 사랑해도 오늘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남녀의 사랑은 촛불과 같은 것이니까. 그러므로, 내일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오늘은, "사랑한다면" 지금 당장 그녀에게 뛰어가야. 그게 영영 꺼져버리기 전에. 한번 꺼져버린 사랑이 다시 타오르는 건,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것에 비견될 기적같은 일.



*



장마가 시작되었을 무렵 이런 괴상한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햄버거를 먹으며 앉아 있는데 양희가 깜박 잊을 뻔했다는 투로,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한 것이었다.

"안 해?"

"네."

"왜?"

"없어졌어요."

필용은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표정 없는 얼굴이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는데 말이 되는가?

"없어? 아예?"

"없어요."

"없는 게 아니라 전만큼은 아니게 시들한 거지. 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사라지냐?"

필용은 무심하게 냅킨을 쥐었지만 손은 약하게 떨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 불길함이 일고 있었다.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그래, 쓰나미, 쓰나미, 실연의 쓰나미! -30쪽




하지만 내일은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오늘은,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서 필용은 뒤돌아 극장 쪽으로 뛰어갔다. -42쪽


ㅡ「너무 한낮의 연애」,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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