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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창비 (2019)

by 새 타작기 2020. 1. 30.

 

선량한 차별주의자
국내도서
저자 : 김지혜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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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7쪽
장애인에게 하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 역시 전제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을 가지라는 건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했다. -9쪽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관념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다수자 차별론도 결국은 차별은 옳지 않다는 기본 전제 위에 성립한다. 사람들은 적어도 평등이라는 원칙을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에게 차별을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에 가담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25쪽
호의와 권리에 대한 이 이른바 '명언'(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은 호의로서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이 우위에 있는 권력관계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호의성(시혜성) 자선사업이나 정책은 그저 선한 행동이 아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행위이다. 만일 당신이 권리로서 무언가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 -27쪽
특권을 말하자면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이다. (중략) 특권을 가졌다는 신호가 있다면 큰 노력 없이 신뢰를 얻고,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들이다. 나에게 알맞게 주변 환경이 만들어져 있어 끊임없이 주변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안한 상태이다. -28쪽
누구의 삶이 더 힘드냐 하는 논쟁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모두가 똑같이 힘들다"는 말도 맞지 않다. 그보다는 서로 다르게 힘들다고 봐야 한다.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기회와 권리가 다르게 분배되고, 그래서 다르게 힘들다. 여기서 초점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삶을 만드는 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그렇기에 불평등에 관한 대화가 "나는 힘들고 너는 편하다"는 싸움이 되어서는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 "너와 나를 다르게 힘들게 만드는 이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공통의 주제로 이어져야 한다. -34쪽
기존에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이 손실로 느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상대의 이익이 곧 나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35쪽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나는 어디에 서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가. 내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평평한가.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세상에서 한발짝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해보아야 한다. -38쪽 
여성이 주류 집단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 성별로 인한 지위 외에도, 사람은 수많은 다중적 지위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앞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한곳에만 서 있는 게 아니다. -41쪽
사람들은 익숙한 어떤 조합, 즉 전형적인 성별, 나이, 인종, 민족, 직업 등을 떠올린다. 바나지와 그린월드는 사람들에게 기본값인 디폴트가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미국인'이라고 하면 백인-남성-성인을 떠올린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어떤 특징이 떠오르는가? -44쪽
고정관념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다. 이 머릿속 그림이 대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다. -47쪽
이런 연구들을 보면, 집단의 경계가 생각보다 공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단을 가르는 경계는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고 또 움직인다. 한국사회의 경험을 보더라도 외국인이 이 땅에 발 딛는 것에 반대하여 "국민이 먼저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동시에 올림픽 경기를 위해 낯선 외국인을 국민으로 맞는다.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국적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를 '우리'라고 보는지 주관적인 관념에 달려 있다. -53쪽
힐은 여성으로서도 흑인으로서도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차별의 교차로에 서 있었다. -57쪽
다중성을 생각해야 비로소 내가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58쪽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60쪽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되지만, 그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면서 그 집단을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때 그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흡수되고 이 고정관념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느냐에 따라 본인의 역량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66쪽
어빙 고프먼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인 낙인이 내면화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사회가 부여한 낙인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굳이 타인들이 노골적으로 차별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차별적인 구조가 유지된다. 차별을 받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부조가고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지도 않는다. -66쪽
여성이 수학에 소질이 없다는 문화적 고정관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능력을 저평가하고 수학 관련 진로 선택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71쪽
구조적 차별은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미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할 때,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 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 -74쪽
"우리의 시야는 제한적이고, 우리는 더 크고 서로 교차하는 패턴보다는 한가지 상황, 예외, 일회성 증거에 집중하게끔 사회화되었다." -79쪽
우월성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위치에 따라 같은 장면이 웃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내가 우월해지는 장면이라면 웃기지만, 반대로 내가 깎아내려진다면 웃기지 않다. -87쪽
"왜 웃긴가?"라는 질문은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88쪽
금기된 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권력에 도전하는 풍자가 가능하고, 사회는 그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금기의 빗장이 약자를 향해 풀렸을 때 잔혹한 놀이가 시작된다. -89쪽
잔혹성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엄청난 간극에서 온다고 했다. (중략) "농담은 농담일 뿐"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유머,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90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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