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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의 사생활』, 박찬용, 세이지 (2019)

by 새 타작기 2020. 1. 20.

 

잡지의 사생활
국내도서
저자 : 박찬용
출판 : 세이지(世利知)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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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에디터적인 취향이라는 말은 좀 그렇지만 잡지 에디터적인 태도라는 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세상 모든 일의 재미를 궁금해하는 호기심. 자기가 모르는 세상에 대한 겸손. 남에게 정보를 주어야 하니 어디서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겸허한 자세.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마음. 적다보니 이런 사람들이라면 에디터 말고 다른 일을 더 잘할 것 같기도 하다. -50쪽
어시스턴트가 전화하는 말투만 들어도 저 친구가 에디터가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있어요. 어시스턴트도 6개월쯤 하면 반쯤 에디터가 되어서 사람을 가리거든요. 처음에는 모르니까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도 조심하지만 나중에는 위치를 알게 되죠. 프리랜서이고, 상근하지 않고, 이런 걸 알다보면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있죠. 그런 싹수가 있는 친구들은 바로 보여요. 그런 사람들이 진짜 에디터가 되면 장난 아니예요. 3년차에 이미 부장처럼 구는 사람도 있죠. 이상하게 못된 것부터 배우거나, 법인카드로 딴 짓을 하거나. -83쪽
교열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에디터들은 오히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아요. 겸허하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뭐가 부족했는지 의견을 들어요. '이게 부족한가? 이래도 부족한가?' 같은 태도로 몇 번이고 다시 물어봐요. '이 말이 맞네요'나 '(제안을 받아들여) 이렇게 쓰면 더 좋겠네요'같은 자세로요. 솜씨가 부족하고 자기 고집이 센 경우에 교열가의 제안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요. 초보인지 아닌지도 상관없어요. 오히려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붙는 연차에 고집을 부리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잘 쓴 글은 많이 못 봤어요. -89쪽
어디 가서 뭘 잘해본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곳이 어릴 때 일하던 스튜디오였어요. 문제아라서 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 당하고 욕만 먹고, 경찰서 들락날락하고, 부모님을 제외하면 동네 경비 아저씨까지도 인상 쓰고 쳐다봤고, 학교에서 칭찬 한번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스튜디오의 형들께서는 예뻐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었어요. -118쪽

 

이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사진을 엄청 잘 찍는 사람들이 있어요.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사진가라는 이름을 걸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좋은 사진을 찍는 분들을 봐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직업도 따로 있고, 자기를 사진가라고도 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 바닥도 그래요. 다른 일을 했어야 하는데 사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도 해요. 직업이라는 게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요. -122쪽
영화는 만들어지는 과정이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섭외도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다. 여러 사람이 특정한 시간에 한 곳에 모이는 게 그 자체로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73쪽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섭외에는 정석도 패턴도 없다. 인맥이 넓거나 글을 잘 쓰거나 끈질겨서 이 셋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섭외가 어느 순간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꼭 잡지 일을 안 해도 이런 재주가 있다면 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섭외의 노하우도 당연히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부탁하고 거절당하는 게 이 직업의 일부라 여기고 있다. 모든 사람의 직업 활동에도 거절당하는 게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으니 딱히 징징거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75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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