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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원칙'은 뭐예요?
이국종 : 의사고 뭐고, 그냥 직업인으로서의 원칙이라면...... '진정성'이요. 진심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 인생을 돌이켜볼 때 정말 진정성 있게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마음. -55쪽
의료계 적폐라면......
이국종 : 말도 안되는 업무환경을 만들어놓고 '하면 된다' 정신으로 버티게 하는 거요. (중략) 의사들은 때리고 간호사들은 태워서 세계 최고의 전사를 만들 건가요? '돌격 앞으로' 식으로 밀어붙여서 겉으로 보이는 성과를 채우는 데만 급급해하는 것, 그게 과거 고도성장기의 적폐 아닙니까? 그렇게 일해서는 어느 분야든 지속가능성이 없어요. -62쪽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보상이다." (브라이언 올굿 대령) -65쪽
임순례 : 달라이라마가 열흘간 법회를 하시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무리 수행을 하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그것이 실천과 연결되지 않으면 완벽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요. 새로운 말씀은 아닌데 가슴에 깊이 꽂혔어요. 그래서 카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 거죠. 10년 후쯤 영화를 덜 만들고 여유가 생길 때쯤이면 대표를 맡을 수 있겠다고 말했지만, 10년 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잖아요. 동물에 대한 내 관심이 시들해질 수도 있고 이들이 나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지명도 없는 살마이 되어 도와주려야 도와줄 수 없을 수도 있고...... 미루지 말고, 이들이 가장 나를 원할 때 나서보자 생각했어요. -113쪽
최현숙 : 저는 <국제시장>이 보여주는 성공의 개념에 반대해요. 악착같이 돈 벌고, 가족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간주되는데, 이게 우리 사회의 소위 '정상 이데올로기'를 구성하죠. 현실에서 마주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실 '다양한 비정상'들이에요. 돈을 벌 수도 못 벌 수도 있고,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못 하기도 하고...... 그런 이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그 기준을 내면화해서 자기 삶은 쓸모없다든가 창피하다고 여기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해요. -126쪽
'돈과 체력과 섹스가 강해야 남자답다!'는 강박관념!
최현숙 : 그렇죠. 그래서 여기 미달하면 자기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기면서 깊은 상실감이나 자괴감에 빠져버려요.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가난한 남성은, '남자다움''의 기준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거지요. -131쪽
☆☆
최대 피해자에게 우선 관심이 갔군요.
구수정 : 그렇게 얘길 듣는데, 맨 앞에서 계속 나랑 눈을 마주치려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날 붙들고 얘길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애써서 시선을 피했죠. 밤 10시 반쯤 되어서 "나는 이제 시내로 돌아가야 해요" 인사하곤 부랴부랴 마을을 떠났어요. 봉고차를 세워둔 차도까지 한참을 걸어서 나오는데 그 할머니가 안 가고 계속 날 뒤좇아오는 거예요. 밤은 늦었고 나는 또 붙들려서 얘기를 들을 수가 없는데...... 내가 뛰어가면 할머니도 뛰어오고 내가 멈춰서 할머니를 돌아보면 할머니도 멈춰 서서 딴전을 부리고. 그러니 맘이 엄청 불편하죠. 그래도 나는 내 길을 가고 싶었어요. 봉고차에 올라 문을 쾅 닫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 늙은 할머니가 차 뒤에서 따라 뛰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요?
할 수 없이 차를 멈추고 할머니한테 물었어요. "뭐요? 도대체 왜요? 그러면 또 아무 말이 없었어요.
답답해라......
"나, 진짜 가요. 뒤도 안 보고 갈 거예요." 크게 소리치고 다시 출발하면 또 허정허정 따라오고, 차를 멈추고 물어보면 또 입을 다물고......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나중엔 너무 화가 나서 차에서 뛰어내려가 나도 모르게 할머니 멱살을 잡고 흔들었엉.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빨리해요. 너무 늦었고 난 정말 피곤한데......" 그랬더니 할머니가 하셨던 말씀이......
뭔데요?
난 한 명인데......
한 명?
"난 한 명만 죽었는데, 얘기해도 되겠냐?"라고요. 그 한 명이 할머니의 유일한 아이였어요.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또 할머니한테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당신한텐 그 하나가 전부인데 왜 말을 못 해? 왜?"
아...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어요. 나도 모르게 신발짝을 벗어서 땅을 치면서 엉엉......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옆을 보니 할머니도 나랑 나란히 신발 한 짝을 벗어서 땅을 치며 울고 계신 거에요. 그때 할머니한테 말했어요. "할머니, 미안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말했어요. "아가! 내가 다 안다. 갈 길이 먼데 이제 가라." 그렇게 돌아왔어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내가 석사 하고 박사 하고 교수 하면 정말 이 이야기가 더는 안 들리겠구나. 공부를 멈춰야겠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해야겠다. -157쪽
이은재 : 딸한테 제가 그랬었거든요. "누가 너의 섹스라이프를 궁금해하겠어? (네가 동성이랑) 연애하는 것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될 거 아냐?" 그게 얼마나 가슴 아픈 폭언이었는지 새삼 느꼈어요. 누구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데 근원적인 에너지가 되고, 그게 사회적으로 자신의 가치와 자존감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난 그걸 분리하라고 한 거예요. 사랑하는 걸 숨기고 살라고, 아이는 온통 '세상에 맞서 나 홀로 싸움'을 하고 있는데, 엄마란 자가 모진 소리를 한 거죠. -180쪽
'하다가 망하면 어쩌지'하는 생각 안 하세요?
손아람 : 망해도 해봐야죠. 안 하고 지나가면 나중에 '했더라면 엄청나게 성공했을 텐데' 하는 환상을 평생 지니게 되거든요. -196쪽
지적장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신연령이 몇 살이냐'라는,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장애를 수치화하잖아요. 그런 식의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건가요?
장혜영 :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몇 살 수준이냐고 물어보는 건 사실은 '웬만한 거 다 못하죠?'라는 질문을 굉장히 듣기 좋은 방식으로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서른 살인 사람한테 얘는 몇 살 수준이냐고 물어보는 건 지적인 부분 이외에 그 사람의 인생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질문에 가까운 거죠, 사실은. -216쪽
아무리 친자매라 해도 18년을 떨어져 살았는데, 동생에 대해서 낯설거나 당혹스러운 순간은 없어요?
장혜영 : 아, 제가 동생이랑 살면서 크게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요. '그간 내가 동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구나'하는 점이에요. 전엔 저도 동생의 가장 큰 특성을 '장애'라고 봤던 것 같아요. 동생에 대해서 설명을 하게 되면 동생의 장애에 대해서만 얘길 했지, 정작 얘가 좋아하는 게 뭔지, 성격이 어떤지 몰랐던 거죠.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동생을 대하는 방법을 어려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217쪽
장애인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 아녜요? 훌륭한 뜻을 가진 복지가나 종교인들이 전문가를 데리고 운영하는 좋은 시설이 있다면, 매일 부부싸움하고 애들 밥도 못 챙겨주는 부모 밑에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장혜영 : 그건 진짜 환상이에요. 비장애인들한테 "너, 5성급 호텔에서 살게 해줄게. 평생 거기서 살래? 네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우리가 통제하고, 네가 어딜 갈지도 혼자 결정 못 해, 그렇게 살래?" 하면 뭐라고 할까요? 시설이라고 하는 건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도 장애인을 '격리'하겠다는 것이고, '이 사람은 2등 인간이기 때문에 1등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에는 모자란 사람들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 어떤 능력을 가졌건 자기 인생을 결정할 권리는 그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적장애인들은 자기 인생의 결정권을 행사하겠다는 욕구 자체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이런 건 그냥 우리 편하자고 하는 생각일까요?
그런 거죠.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일찌감치 격리해두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더더욱 할 수 없게 되죠.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도 못 하고, 버스, 지하철 타는 것도 못 하고, 세상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자기 욕구를 표현하는 법도 못 배우고......그래놓고는 "거봐, 할 수 없잖아"라고 말하는 거예요.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놓은 채, "이 사람들에겐 다른 행복이 있을 거야, 갇혀 있어도 행복할 거야" 우기는 거죠.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선 그래서 아예 법으로 이런 격리시설을 모두 폐쇄했거든요. -225쪽
출세는 안 하신 거예요, 못 하신 거예요?
채현국 : 권력하고 돈이란 게 다 마약이에요. 지식도 그래 지식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지식이 많으면 돈하고 권력을 만들어내잖아요. -295쪽
서울대 철학과까지 나오신 분이 지식을 믿지 않는다고요?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거든요.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입니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어요.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에요.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어요. 해답이란 말만 있었죠. 모든 '옳다'라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어요.
반드시?
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모든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에요. -300쪽
기업을 제대로 키워서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는 사람도 많은데요.
그거 전부 거짓말이에요. 꼭 돈을 벌어야 좋은 일 합니까? 그건 핑계죠. 돈을 가지려면 그걸 가지기 위해 그만큼 한 짓이 있어요. 남 줄 거 덜 주고 돈 모으는 것 아니에요? -303쪽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까?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적은 월급으로도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이죠.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습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사는 직업,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이죠. 그중에서도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입니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아요.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봐요.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직업인데......
산파적인 직업은 뭔데요?
시시한 사람들이죠. 월급 적게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이웃하고 잘 사는 사람들.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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