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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쉽게 '육아'라는 말을 쓰고, 어른이 아이를 '기른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는 어떤 조건 속에서도 나름의 삶을 살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한다. 부모는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아이를 지켜보며 성장을 도울 뿐이다. -6쪽
그때마다 나는 아이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이리라 여겼다. (중략)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때든 후퇴할 때든,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을 갖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18쪽
종교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의 특수한 질환에 대해 '너는 특별해서 그래' 라거나 ''너는 신이 내린 특별한 존재야'라는 식의 설명을 많이 한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그런 설명이 장기적으론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외모가 달라 또래 집단 속에서 심각한 따돌림이나 놀림을 당할 가능성이 큰데, '너는 특별해'라는 말이 어쩌면 아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특별함이라면 필요 없다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더 크게 소리치며 자신을 미워하게 되진 않을까. 그래서 현실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22쪽
그만큼 우리는 어떤 평균, 어떤 정상성을 기준으로 세워 두고 그에 맞춰 가거나, 타인의 다름을 부각해 비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짝짝이 정도는 좀 봐주면 안될까? 그날그날 기분과 상황에 따라 짝짝이 양말을 신을 수도 있고, 그래도 된다는 걸 알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그렇게 일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소소한 짝짝이들을 경험해 보면, 나와 다른 능력, 다른 외모를 타고나 나와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다는 걸 좀 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8쪽
'기다려 주기'보다는 그냥 '같이 기다리기'가 될 때, 아이도 부모도 즐겁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기다려'주기'는 아무래도 힘이 들어가는, 억지로 참으며 하는 일인 반면, '같이 기다리기'는 시간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46쪽
놀다 다쳐도, 친구와 사워도 하하하 웃어야 '착한' 어린이라니. 아니 뭐 어린이는 꼭 착하기만 해야 하나? 착한 어린이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고? 장난치지 않으면 그게 어린인가? 다치면 아프고 기분 나쁜데 넘어져도 일어나 웃으라니 저건 또 무슨 소리야! -53쪽
아이가 격한 감정을 느낄 만한 상황이 예상될 때는 미리 설명해 아이가 심리적 부담을 덜 가지게 하고, 아이가 실제로 그런 감정에 빠지게 될 때는 그것에 대해 너무 과하게,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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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소수자인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그리 열심히 시키지 않는다. 다른 부모가 아이에게 시켜 나에게 배꼽 인사를 하게 하는 것이 나는 어쩐지 부담스럽다. 어른들의 세계에서야 누군가를 만났을 때 반가움을 표하고 안부를 묻기 위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인사이지만, 아이들 세계에서는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아이들은 친구를 만날 때, 친구의 엄마 아빠를 마주쳤을 때, 몸짓과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중략) 아이들은 굳이 서로 '정식'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눈웃음 한번 주고 받으며 인사하고는 곧장 "끼야~"하고 소리 지르며 내달리면 그만이었다. (중략) 아이가 예의 바른 사람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이야 문제 될 게 전혀 없지만, 그렇다면 아이에게 "인사해야지"라는 말로 인사를 시키기보단 그냥 부모가 인사 잘 하는 사람, 예의 바른 사람이 되면 되는 것 아닐까. 어린아이일수록 양육자의 언행을 보고 따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60쪽
몬테소리는 아이들이 자기 주변의 사물을 직접 조작하고 통제하려 드는 이유가 아이들이 바로 이 '삶의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안정감은 아이들이 어떤 일을 스스로, 자율적으로 해보고 그 성취와 실패의 경험을 쌓아갈 때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린아이들이 신체 활동이나 학습을 할 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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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 아이들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다. 어른들이 이 수수께끼를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떼'만 보고 그 내면의 정신적 에너지를 보지 않은 채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에는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아무런 이유나 동기 없이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73쪽
모성애를 엄마가 아이에게 갖는 강렬하고 애틋한 감정, 조건 없는 보호 본능으로 간주하고 당연히 여긴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굉장한 부담, 심지어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91쪽
부모의 일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언제나 (미숙한) '아이'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인식하고 존중할 때, 아이와 부모가 서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수용할 때, '사람 만들기'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96쪽
"아이들은 부모의 성자 같은 면모, 완벽한 모습, 그런 것들보다는 부모의 인간다운 모습을 보면서 더 깊은 신뢰를 쌓아 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 앞에서 웃고, 울고, 속상해하며 산다. -99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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