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은 상당히 많은 혜택을 받아 왔다. 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인정해야 할 때다. 여기에는 겸손, 염치 그리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문제 자체를 인식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 중상류층 사이에는 '나는 이만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중상류층이 1퍼센트를 비난하며 '우리가 99퍼센트'라고 외칠 때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지위는 나의 능력(학력, 두뇌, 노력) 덕분이므로 마땅히 나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18쪽
진짜 계급 격차는 최상류층과 중상류층 사이의 격차가 아니다. 진짜 격차는 중상류층과 그 아래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22쪽
중상류층의 규모와 그들이 집합적으로 가진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바꾸고 교육 제도를 장악하고 노동 시장을 변형시킬 수 있다. 또 중상류층은 공공 담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자, 싱크 탱크 연구자, TV 프로듀서, 교수, 논객이 대부분 중상류층이기 때문이다. -23쪽
중상류층 아이들은 대개 양친이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부모 모두 교육 수준이 높으며, 좋은 동네에 살고, 인근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닌다. 또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계발하며 좋은 학위와 자격증을 딴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유리하다. -23쪽
"빈곤의 덫, 즉 바닥 쪽의 계급 경직성보다는 '부의 덫'이라고 부를 만한 반대쪽 끝이 경직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중략) 부유층의 자녀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발밑을 받쳐 주는 더 탄탄한 안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4쪽
'상대적' 계층 이동성은 필연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한 명이 소득 분포 사다리에서 위로 올라가면 누군가는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아래로 내려오는 사람이 내 아이일 수도 있다. 부유한 아이들의 발밑에 유리 바닥을 깔아 하향 이동을 막으면 사다리 아래쪽 아이들에게는 유리 천장이 생겨 상향 이동 또한 막히게 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단지 계급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라 계급 분리가 세대를 거쳐 영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5쪽
역사적으로 미국인들은 교육을 '평등을 일구는 가장 위대한 기제'로 찬양했다. 교육은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개개인이 스스로 삶의 경로를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길이었다. (중략) 오늘날에는 분명히 그렇지 않다. 특히 고등 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다. 학사 학위가 대중화되자 중상류층은 기준을 더 위로 올렸다. 이제 중상류층 지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은 석박사 학위다. 물론 대부분의 중상류층은 다른 이들을 착취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위를 획득한다. 하지만 현 세대에서의 소득 격차가 다음 세대에서 기회의 격차가 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영속적인 계급 격차로 고착된다. -26쪽
"삼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삼루타를 친 줄 안다." -29쪽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만 득이 되도록 시장을 조작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기회의 시장, 특히 주택 시장과 교육 시장은 중상류층에게 유리하도록 조작되고 있다. -30쪽
계속
'[밑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휘 늘리는 법』, 박일환, 유유 (2018) (0) | 2020.01.20 |
---|---|
『어른은 어떻게 돼?』, 박철현, 어크로스 (2018) (0) | 2020.01.20 |
『소득의 미래』, 이원재, 어크로스 (2019) (0) | 2019.12.30 |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진순, 문학동네 (2018) (0) | 2019.12.30 |
『아이는 누가 길러요』, 서이슬, 후마니타스 (2018) (0) | 2019.12.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