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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

예상 못한

by 새 타작기 2016. 9. 4.
도서관에 K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인이 왔다. 예상치 못한 K와 약속된 애인. 이럴 땐 이상하게 앞의 경우에 신경을 쏟게 된다 난. 애인의 자발적인 양보를 기대하면서. 미안할 따름. K와 한참을 놀아주다 보니 어느덧 도서관을 닫을 시간. 부랴부랴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그제서야 짬을 내어 애인과 말을 섞는다. 손걸레는 저기에 있고, 의자는 모조리 올려줘, 류의 대화. 미안할 따름.

도서관을 나서며 K를 위해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나와 K가 나란히, 애인은 서너발자국 떨어진 뒤에서. 한 이십 분 걸었나, 버스정류장을 한 블럭 앞둔 횡단보도에서 K가 갑자기 나와 애인의 손을 덥썩 잡더니 둘을 포개어 놓는다. 거리를 두고 쫓아오던 애인이 못내 안쓰러웠는지 "여기부터 손 잡고 가셔요" 한다. 또, 양손의 약지를 내밀며 (순간 서양의 욕인 줄) "여기다 반지도 끼우셔야죠?"하는데, 오호라 이것이 너의 표현 방식이구나? 녀석, 속이 제법 깊다.

K는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올랐고, 그때부터 예상보다 뒤늦은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데이트 내내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애인도 그런지 자꾸 그 시간을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걷다가 좋은 마음으로 말차빙수를 먹었다.

ㅡ160903

(그림 고마워,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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