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밑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천종호

by 새 타작기 2015. 1. 5.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저자
천종호 지음
출판사
우리학교 | 2013-02-1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SBS [학교의 눈물] 천종호 판사의 진심어린 고백옅은 봄눈은 ...
가격비교

26 소년법은 용서와 관용을 전제로 한다.

27 소년부 판사의 판결은 한 소년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늘 법정에 들어가기 전 법복을 입은 채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한다. 비행소년 역시 우리들이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야 할 대한민국의 소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해달라고, 아집,편견,건성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소년들의 소리 없는 외침까지 귀 기울이게 해달라고, 소년들에게 가장 적합하면서도 공정함을 잃지 않는 처분을 내리게 해 달라고, 소년들이 나의 처분을 죄에 대한 응보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전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달라고.

29 판사는 소송 당사자에 앞서 말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경청'과 '청청', 다시 말해 '잘 듣기 위해''듣고 또 듣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소송당사자들도 재판의 절차와 결과를 납득하고 받아들이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37 이곳에 온 소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미세한 눈짓이나 몸짓, 이해할 수 없는 말투나 거슬리는 행동 하나도 무심하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건강한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해 본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살펴야만 이들이 보내는 마음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

38 소년들은 아직 미성숙한 면이 많기 때문에 판사나 어른의 눈높이에 맞추어 다가가려고 하면 소통에 실패할 확률이 많다. 그래서 소년들을 훈계할 때 나는 비교적 단순하고 쉬운 말만 골라 사용한다. 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보다는 유치하더라도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주로 쓰는 편이다. 아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은어를 알아두는 것도 꽤 도움이 된다. 아이들은 판사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신기해하면서 친근감을 갖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기도 한다.

45 부모 자식 관계의 회복, 다시 말해 가정의 회복이 비행소년의 교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60 비행소년들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열악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질곡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나쁜 선택으로 내몰린다... 금희와 은희처럼 강퍅하고 부조리한 현실의 벽 앞에서 끝내 좌철하는 소년들 또한 부지기수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년들과 소통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소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의 주인공이며, 비행소년들 역시 대한민국의 소년들이기 때문이다.

74 전화를 끊는 은미의 목소리에서 미안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는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이를 구하려면 내가 참을 수밖에.

87 얼어붙고 웅크린 피해자의 마음을 다독여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길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참된 화해 뿐이다. 참된 화해란 시중에서 통상 '합의'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사과와 금전배상'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해야 한다. 그래야 가해자의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가 오롯이 만날 수 있다. 또한 용서를 했다 해도 피해자의 마음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기도 한다. 화해가 이루어진 후에도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최선을 다할 때만이 진정 어린 사죄라 할 것이다.

98 판사님 이제 저를 미워하지 마시고 이뻐해 주십시오

-

119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런 유형의 폭력으로 끔찍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피해자인 학생이 언제 가해자가 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게 될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가는 악순환의 고리는 반드시 끊어주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한 학교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126 교사들이 사건을 보는 시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성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학교의 명예와 학생의 앞날을 위해 사건을 무조건 좋은 쪽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잘못을 덮는 것이 소년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126 특히,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에게 더욱 호되게 쓴소리를 했다. 학생을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원칙에 가까운 진실과 도덕,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여 학생들을 선도하려 하기보다는 진실에 눈감으면서까지 학생들의 잘못을 무조건 덮으려한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133 세상에는 역지사지하는 마음만 가지고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런데 아무리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라고, 그래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말해줘도 이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럴 때 나는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간혹 강경한 수단을 쓰기도 한다.

136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태를 수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교육이다. 사태의 심각성과 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들에게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살아 있는 교육이다. 진정한 사죄와 용서를 통해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아들의 기회를 그 어머니가 빼앗은 것 같아 씁쓸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138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들이 절망감과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거창한 도움을 주지는 않더라도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174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뉘우침에서 나온 진심 어린 사죄의 말 한 마디가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는 법이다.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뉘우침에는 인색하면서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는데만 정신이 팔린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상대의 마음은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처분 역시 강화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176 '이중성'... 장애인의 인권을 다룬 영화에는 열광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주거지 근처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극구 반대한다. 또한 학벌주의가 문제라고 개탄을 하면서도 자기 아이는 과도한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서열 높은 대학에 입학시키려 한다. 이런 이중성은 법 감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는 엄벌을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이나 가족이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합리화하기 바쁘거나 가볍게 처벌받기만을 바란다.

181 차별적 시선이 폭력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드러났고, 결국 피해자가 학교를 자퇴해야 하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어쩌면 성규의 지나친 행동은 '문제학생은 이렇게 대해도 된다'는 우리 사회의 묵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때로는 드러난 개인의 폭력보다 '그럴 수도 있다'는 묵시적 관용이 더 무서운 법이다. 학교와 교사는 두 아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일상화된 차별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다지만 최소한 학교에서만큼은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하지 않을까? 밉든 곱든 모두 교사가 품어주어야 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184 미래 사회의 자원이자 주인공인 소년들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185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조건 없는 용서는 죄를 지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참회하게 만든다. 피해자 역시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를 용서하는 순간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미움과 원망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용서는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86 하지만 피해자에게 용서를 의무지울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줄 뿐이다. 용서는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무다. 이러한 책무를 잘 이행하는 사회가 인간을 인간답게 존중해주는 사회라고 할 것이다.

-

227 비행청소년들은 너무 가난해서, 경험이 부족해서, 건강한 관계를 맺어보지 못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안타까운 이유들로 스스로 기회를 붙들기가 어렵다. 우리에게는 사소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아주 큰 기회이자 놀라운 선물이 될 수 있다. 따뜻한 관심과 격려의 시선이 아이들이 올바르게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252 사과 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어른들이란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 외로운 네가 방황할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우리가, 어린 네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할 때 손 내밀어 주지 못한 우리가, 너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우리가...

263 청소년회복센터는 소년원과 같이 집단적이고 폐쇄적인 시설에 소년들을 맡겨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개방적인 인간관계를 통한 교정을 꾀하면서도 소년들을 방임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267 스님과 센터장이 외출한 어느 날 소년들은 자기들끼리 라면을 먹었는데 욕심을 내서 너무 많이 끓이는 바람에 다 먹지 못하자 남은 라면을 개수통에 통째로 부어버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센터장은 개수통에 버려진 라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물건을 아껴 쓸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줄 요량으로 소년들을 모두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고 나서 버려진 개수통에 다른 음식 찌꺼기와 함께 있는 라면을 모두 다 건진 다음 물에 씻어 양푼지에 담은 뒤 아무 말 없이 양푼 가득한 라면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이를 지켜보던 소년들은 비위가 상해 '웩웩'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쳤지만, 그 일 이후로는 가능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들 한다.

282 먼저 배고픔부터 채워주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인간은 누구라도 충분히 먹을 수 있고 자기 집처럼 안정되게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우선 해결된 후에야 비로소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85 가난은 잘 맞지 않는 옷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신을 신발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은 땔 나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가난은 땔 나무를 살 돈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가난은 그런 '걱정'입니다. -펠레

286 빈곤한 환경에 처해 있다 해도 가정이나 학교, 지역사회 등으로부터 적절한 지지와 관심을 받으면 심리가 안정되고 사회적 적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86 청소년기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 이 짧은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조금이라도 심어주어야 한다. 비록 그 추억이 반딧불 같이 작다 해도 방치되어 외롭게 살아왔던 아이들에게는 어두운 길을 비춰주는 아름다운 별빛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88 "판사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대접을 잘 받았어요."

289 "우와 쩐다. 이렇게 맛있는 삼계탕은 내 생전 처음 먹어봤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