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육체파 부인의 유언장」 : 기증
시를 읽고 나서, 내 육체는 어디에 기증하면 좋을 지 생각해 보았다. 생각나는대로 마구 나열해 보자면, 뻗치는 직모는, 서툰 미용 수습생에게, 연습용 마네킹으로(연습해 두세요, 나같은 손님을 위해). 속눈썹은, 아리땁지만 적은 숱의 속눈썹이 못마땅해 반영구 속눈썹 연장술을 받으려는 이름 모를 여인에게, 액세서리로. 활자를 좋아하는(좋아하기만 함) 내 눈은, 글 읽기가 고역인 어느 이과생에게로(단, 가끔씩 뾰족한 물체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발바닥은, 나의 꽃같은 20대에, 내 삶 최초로 여행다운 여행으로서, '멍때리며 걷기'의 첫걸음을 마침내 디뎠던 땅끝 해남에, 발바닥 형상의 동상으로. 온 몸의 털은, 춥디 추운 전방에서 밤낮으로 경계작전을 할 무모증의 군인에게, 방상내피로. 답답한 목소리는, 배..
2016.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