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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허혁, 수오서재 (2018)

by 새 타작기 2020. 3. 21.

 

나의 경우는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 친절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23쪽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본다. -25쪽
그날 왜 그렇게 슬피 울었는지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별것 없었다. 내가 대견해서 그렇게 울었다. 가게 팔고 반년도 안 돼 관광차 몰고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들 원 없이 춤추고 놀게 해준 내 자신이 너무 멋져서 그렇게도 울었다. -31쪽
씨발놈, 또 쭝병 났네 -40쪽
원래 나쁜 기사는 없고 현재 그 기사의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잘하고 싶지 일부러 못하고 싶은 기사는 없다. -44쪽
☆☆☆
아버지, 그날 밤 왜 그렇게 저를 때리셨어요. -60쪽
어찌 외롭고 괴롭지 않고 한 세상 보낼까마는 아이들이 다 듣고 있다. 아이들 앞에서는 숨도 함부로 쉬면 안 된다. 어른들 숨소리만 들어도 맑은지 흐린지 바로 안다. 아무리 외롭고 괴로워도 맥없이 버스 타서 이상한 소리들 내지 말고 강으로 가라. 당신의 외로움은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64쪽 
구글 사장은 티브이에서 운전 같은 단순 작업은 인공지능한테 맡기고 전 인류가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자고 열을 올린다. -68쪽
앞차를 빼먹은 동료도, 항의하는 승객도 그 어떤 누구도 잘못이 없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77쪽
산다는 건 리듬을 타는 일이다. 그 리듬으로 한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상버스가 휠체어 탄 승객을 싣기 위해 리프트를 펴는 잠시 동안에도 '빵빵'거리며 도로가 난리다 난다. 버스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낮아져야 한다. 빨리 가봐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유했으면 좋겠다. -79쪽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위치에서 보면 사람 됨됨이가 잘 보인다. 상대방이 돈도 없고 완력도 없어 보이면 굳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 번 얕보이면 한도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온다. -97쪽
시내버스 일의 핵심도 예측이다. 안전운행은 두말할 필요 없이 예측운전이 기본이며 친절기사의 선행조건도 예측이다. 예측한 범위 안에서는 모두 참고 피해갈 수 있다. 상대방이 예측을 벗어날 때 화가 나는 법이다. -114쪽
촛불 이후 나의 공정속도가 점차 틀을 잡아가고 있으나 등교 시간대만큼은 과거 호전적인 운행을 요구받는다. "아저씨, 제발 빨리 좀 가주세요!" 소리 없는 아우성 때문에 기사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사를 힐끗 째려보고 엉덩이를 삐죽거리며 내달리는 학생을 보면 혹시 내가 적폐 버금가는 진보소아병자는 아닌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늦잠꾸러기 학생이 공정기사를 만난 것이기 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결심이 저 학생을 지각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117쪽
기사가 승객에게 잘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승객이 기분 좋게 내려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도 기분 좋게 대할 것이다. 사소한 시내버스 하차 하나가 빛의 메아리가 되어 멀리멀리 퍼질 수 있다는 상상으로 하루를 보냈다. -127쪽
기사 생활 이 년여 만에 터득한 시내버스 최고의 덕목은 닥치고 빨리 달리는 것이고 승객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는 친절한 언행이 아니라 과감한 신호위반이다! -133쪽
새벽에 비가 억수로 퍼붓는데 팬티만 입고 뛰어다니며 차를 빼놓던 동료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135쪽
수고한다는 인사는 마음이나 몸으로 할 것. (느낌이 온다. 입으로 수고한다는 승객 중 절반이 진상이다. 특히, 수고한다며 바로 기사 뒤에 앉는 인간은 백 퍼센트 진상이다.) -138쪽

(계속)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국내도서
저자 : 허혁
출판 : 수오서재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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