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착한 청년이지만 공연히 밖으로 돌며 늦은 귀가를 합니다. 일거리, 밥벌이가 없으니까요. 있어도 비정규직이니까요. -21쪽
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하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로해주는 가족만 있어도,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버틸 수 있습니다. -23쪽
그래서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유예하는 청춘들입니다. 취직이 안 돼 졸업을 유예하고, 결혼이 부담스러워 연애를 유예하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독립을 유예하는 등, 삶을 위해 꿈을 유예하고 사는 청춘인 겁니다. -24쪽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여서라거나, 각별히 책임감이 강해서가 아니라,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직업의 본질이 요구하는 것을 지키는 것뿐이며, 그러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8쪽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29쪽
내가 하는 어떤 일로 누군가의 이마를 덮어줄 수 있다면, 그 일이 그 순간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우리도 서로의 이마에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이마를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우리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33쪽
지구 밖 절대적인 시선에서 우리 인간들을 한번 내려다보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를 바라볼 때는 허무하기만 한 몸부림 같았는데, 절대자의 시선에서 보면 우리는 참 처연하면서도 장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입니다. -35쪽
별다른 보상 없이도 일 자체에서 깊은 보람을 느끼고 완벽주의자처럼 세심하고 까다롭게 일하는 인간, 즉 우리 안에 잊힌 장인의 원초적 정체성을 오늘날에도 복원해야 한다고 그는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50쪽
시인이 되기 위해 굳이 시를 쓰지 않아도 좋다고 이 시인은 말합니다. 삶이 시적인 사람이야말로 시인이라고. -58쪽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어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59쪽
"내가 너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공부하라'는 말이었다는 답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속상할까요. (중략) 자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가슴속까지 뒤져가면서 찾은 말이 고작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65쪽
이럴 때, 인간이라면 당연히 종을 이어가야지, 그래야 우리 민족이 잘살 수 있지, 하는 따위의 공리주의 의무론적 윤리를 들먹이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러기 전에 부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녀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권리, 그 권리를 누리고 싶어도 누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며, 제발 이 문제를 힘없고 불쌍한 우리 가족에게만 맡기지 말고 나라와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 해결해 달라 요구하기를 바랍니다. -73쪽
아이를 키우는 사용설명서 같은 게 있으면 더 잘 키웠을까요?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전제품 같았으면 말 안 듣는 사춘기가 오자마자 진작 신상으로 갈아타지 않았을까요? 농담입니다. 아이가 가전제품 같지 않다는 말은 그만틈 우리 아이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귀한 내 자식인 것이죠. -75쪽
사춘기는 그가 거듭나고 있다는 증거. 이때부터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다양하게 달라지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세워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다시 태어나는 사춘기 소년들을 보며 우리가 할 일은 뱃속에서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기다려주는 일뿐입니다. -76쪽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이다. -78쪽
그냥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는 일, 엄마랑 눈 맞추고 품에 안기어 젖가슴 만지는 일, 아니 아니 엄마가 오 분만 다시 살아 돌아와 만나는 일, 그게 가장 절박하고 순박한 소원인 겁니다. -89쪽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마음과 의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육아든 봉양이든 돌봄은 시간과 비용의 허용 범위 내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용을 대려면 직장을 다녀야 하고 시간을 맞추려면 직장을 관둬야 하는 갈등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두고, 요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든가, 자식 다 소용없다든가 하는 말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모세대들더러 노후 하나 준비 못했느냐, 그러기에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몸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철없는 투정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돌봄이 여의치 못한 상황이라면 원망보다 연민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97쪽
장담하던 내 아배도 마음속으론
세상에게 무수히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99쪽
부모라는 이름으로, 혹은 자식이라는 이름 때문에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감사해야 할 복인 겁니다.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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