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농업 사회의 어린이
(수렵 사회)
어린이는 그저 방해만 될 뿐이었다. -43쪽
유럽에서는 농업이 도입되기 직전까지 대부분의 수렵채집 집단은 5세 이전에 죽은 아이들을 땅에 묻는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를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의 죽음을 우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너무 많이 생존하게 되면 가족과 공동체의 생존에 위협이 되었으며, 그래서 죽기를 바랐음은 명확하다. -44쪽
분노의 감정을 생각해보자. 수렵채집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적잖이 분노를 표현하게끔 조장한다. 부모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례를 들어 분노를 표현하는 훈련을 시킨다. 이와는 달리 예컨대 캐나다의 우트쿠 이누이트 집단은 2세 이상의 아이들의 분노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분노'를 뜻하는 단어도 없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울거나 애완동물을 학대하는 구체적 표현을 전혀 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한다. -46쪽
(농업 사회)
농업이 가져온 가장 명백한 변화는 일을 할 때 어린이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었다. (중략) 수공예품 생산이나 가내 제조 활동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농업 사회는 수렵채집 사회보다 훨씬 더 명백히 어린이의 핵심적인 속성을 유용하다고 규정했다. (중략) 우리는 출산율이 상당히 빨리 상승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데, 이는 농업이 식량 공급의 확대를 가능하게 했으며 어린이가 식량 수집을 단순히 보조하는 것을 넘어서는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현실이 되었음을 말해 준다. -47쪽
농업 사회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이나 아동 중심 사회였다.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웠다는 생각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모만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어느 정도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마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49쪽
"너는 명예로운 남자가 아니다. 아내에게 아이를 갖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는 남자라면, 고아를 입양해서 키우게 하라." -49쪽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도, 많은 가정에서는 의술로 어린이를 치료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50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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