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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김 현, 봄날의책 (2019)

by 새 타작기 2020. 3. 15.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국내도서
저자 : 김현
출판 : 봄날의책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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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보라 씨가 요즘 들어 매우 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자기 것'을 찾고자 소원하는 모양이다. 사무노동과 가사노동으로 이어지는 생활에서 벗어나 한순간일지언정 대리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나라는 주체가 되어보고자 하는, 그런 걸 가능하게 해주는 물건 혹은 행위를 발굴해내기 위해 골몰 중이라는 전언. -15쪽
남들이 하는 걸 다 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나만의 것'이 있다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중략) 어느 날 불쑥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나를 더 구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상념이 밀려올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럴 때 우리는 자주 더 먼 것에, 더 새로운 것에, 더 특별한 것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지만 어쩌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자신과 제일 가까운 것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 내 곁에 머무는 동물(사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노동이 바로 나를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임을 우리는 자주 잊는 건지도 모른다. (중략)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을 꾸준히 하는 사이에 비로소 내(나를 둘러싼) 서사가 생겨나기도 하는 법. -17쪽
어리석게도 아파야지만 지금까지 써먹어온 몸을 되돌아본다. (중략) 아플 때 여러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괜찮아, 어쩌다 이랬어, 나이 먹으면 뼈도 잘 안 붙는다는데, 앞으로 살살 좀 살자, 라는 말들은 그 자체로 어떤 보험의 특약 같고, 1등보다 사실적으로 쓸모 있는 5만 원짜리 당첨 번호 같으며, 아픔을 마주하게 하는 용기 같다. 아프지 않은가? 그럼 아픔에게 손 내밀길. 아픈가? 그럼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말하길. 손 내밀어 주세요. -25쪽
너부터 아들 노릇 하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명절이면 현금을 준비하고, 일찍 귀향해 동그랑땡도 부치고, 술상도 단정히 차려내고, 설거지도 깜끔히 했는데, 며느리를 고용하고 대를 잇는 아이를 생산해야만 충실해지는 아들 노릇, 참 이상한 노릇이다. 결혼하면 효자가 되는 아들 노릇은 또 어떻고. -39쪽
'직장인 건강검진 시즌'이라는 테두리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 나도 오랫동안 그런 노동자였다. 자신들의 무지외반증을 전시하면서까지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외친 백화점 판매사원들이나 연말이면 공연 연습에 더 힘써야 했던 간호사들, 취업률 저하 때문에 학교로 복귀하지 못하고 학교 밖에서 목숨을 잃은 현장실습 노동자들 모두 건강을 챙기는 삶보다는 건강을 염려하기만 하는 삶을 사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들에게 건강검진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49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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