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서로에게 강제력이 없는 자발적 모임에서 홍길동과 같은 인물이 등장했을 때 가장 흔한 결과는 다수 참가자가 이탈하는 것이다. 이런 인물을 상대로 맞서 논쟁을 벌여서 얻는 것은 많지 않고, 이탈은 아주 간단하다. 이탈은 개인에게 '합리적 선택'이 되고, 충돌은 홀로 부담을 지는 '비합리적 선택'이 된다. 다들 이탈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하면, 모임은 끝이 난다. 파국으로 가는 가장 흔한 경로다.
77 도루가 얼마나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는 사회인 야구를 보면 안다. 주자의 주루 능력보다 포수의 송구 능력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리그에서는, 도루는 도박적인 옵션이라기보다는 필수 공격 기술이 된다. 동네 야구에서는 아예 도루가 금지인 경우가 꽤 많다. 우리가 보는 야구는 이렇게 한쪽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와장창 무너져 버리는 아슬아슬한 균형점 위에 서 있다. 이런 균형을 만들어 낸 사람이 천재가 아닐 수도 있나?
86 후에 정재승 교수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였고, 장기화될수록 힘이 빠지는 국면이었다. 어떻게든 결과를 내는 게 참여자들에게도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남은 시간은 한 달. 일정을 확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할 수 있는 것만 하도록 목표를 좁혀야 했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권위가 필요했던 시점이라면 '홍길동의 난'이 아니라 여기, 미련이 남은 불가능한 목표 '굴드 너머'를 포기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95 4할타자가 사라진 것은 제2의 백인천이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선수들이 백인천과 장명부가 되어서다. 이것이 백인천 프로젝트가 내린 결론이다.
96 잠깐 옆길로 새자면, 언론과 취재원의 신사 협정이란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다른 언론이 배신을 하든 협력을 하든 상관없이 '늘 배신이 최적 전략'이 된다. '협력 대 배신'이라면 내가 1보를 쓸 수 있고, '배신 대 배신'이라면 업계 용어로 '낙종(특종기사를 다른 언론사에 뺏기는 것을 가리키는 말)'을 피할 수 있다. 반면 협력전략의 결론은 잘 해 봐야 공동보도이고, 배신을 당하는 순간 낙종이다.
98 정재승 교수는 교신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정석이었겠지만, 본인이 사양했다. 정재승 교수의 이름은 공동 저자 명단에 아무런 별도 표기 없이 알파벳 순서에 맞춰 열두번째로 실렸다. 이력 소개에도 교수 직함조차 없이 소속 학과만 적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한 명의 참석자/관찰자로 본인 역할을 한정했으며, 결과물을 어떻게 '자기 장사'에 써 보겠다는 기색은 전혀 보여준 적이 없었다.
136 백인천 프로젝트에는 몇 가지 중요한 모순이 있다. 우선 이름이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유일하게 4할타율을 기록한 백인천 전 감독의 이름을 땄지만, 이 프로젝트는 한 선수의 영웅적인 일대기를 부각하거나 출중한 능력을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우수한 그 기록이 재현되지 않는 것이 결코 후배들이 못해서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후대 선수들이 "고루 잘하게 돼" 백인천 전 감독처럼 '튀는'선수가 '4할이라는 튀는'기록을 기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물론 백인천 전 감독은 대단한 선수였지만 오늘날의 최고 수준의 선수에 비해 무조건 뛰어난 타자였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206 그렇다고 아무도 다시는 4할 타율을 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야구 초기에 그렇게 흔하던 최고 기록이 아니라 이제는 100년만의 홍수처럼 한 세기에 한 번 성취될까말까할 정도의 극도로 희귀한 사건이 되었다는 말이다. 매 시즌 그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매 시즌마다 초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 스티븐 제이 굴드, <풀하우스>에서
281 4할이라는 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마인드의 설정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양준혁은 4할로 올라가려 하기보다는 3할 5푼을 맞추기 위한 '유지의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고 본다. 이런 마인드가 분명히 예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선수들을 볼 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3할이면 충분하지 않나,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4할을 꼭 쳐야 한다는 도전의식이 크게 없었을 것이다. 특히 장효조 선배 같은 경우는 성격적으로도 이만수 감독이나 이대호처럼 편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3할을 못 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했을 것이다. 그 균형점이 3할, 그래서 늘 3할 타율을 기록했지만 4할에 대한 동기 부여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 김정준
306 본인이 4할에 목표를 두었다면 장효조 선수도 그때 4할을 칠 수 있었을 것 같다. 4할에 도전할 수 있을만큼 본인의 능력은 충분했던 선수다. 투수들의 구종도 직구, 슬라이더, 커브 정도로 단순했던 시기인데다가 수비력도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어서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을 텐데 다만 본인의 의지가 고타율을 기록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 김용달
322 4할을 치기 위해선 안타를 많이 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타수가 적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볼넷이 많아야 한다. 한 시즌에 500타수를 나선다면 200안타가 필요한데 193안타를 쳤던 93년의 이종범이 9개의 볼넷만 더 얻었다면 결과적으로 4할 타율이 가능했다. 즉 안타를 생산해 내는 능력 못지 않게 볼넷을 얻어낼 수 있어야 4할은 가능하다. 4할을 칠 수 있는 건 장거리 타자보다는 정교한 교타자라는 것은 편견이다. 이 주장은 볼넷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이른바 '똑딱이 타자'에게는 볼넷을 주지 않는다. 장타가 없는 선수에게는 볼넷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테드 윌리엄스도 그랬듯 정교하지만 장타력이 있는 선수들이 볼넷을 얻는다. 그리고 볼넷을 많이 얻어낸다는 건 선구안이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이종범처럼 주력이 있는 선수들이 4할의 가능성이 있다. - 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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