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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by 새 타작기 2015. 1. 6.

 


불편해도 괜찮아

저자
김두식 지음
출판사
창비 | 2010-07-09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인권 재단 선정, 2010년 올해의 인권책김두식, 이번에는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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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착각할 수 있는 나이에는 착각을 하면 됩니다. 그 착각에 너무 깊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헤어나올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늦어진다면? 늦어지면 됩니다. 10대나 20대에는 인생이 남들보다 3~4년 늦어지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몇 년 빠르고 늦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시기마다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딸만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한 욕심입니다. 청소년기에 그런 미망(迷妄)의 시기를 보내지 않고는 성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33 "한국사회에서 전라도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건,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튼 아직까지는, 상처입니다. 이런 상처든 저런 상처든, 어떤 사람들은 그 상처의 기억으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상처를 후벼팝니다. 저는, '전주고 출신'으로 대표되는 제 고향의 엘리뜨들이, 다른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자신이 입은 상처의 기억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 고종석

41 19세는 진로를 선택하기에는 빨라도 너무 빠른 시기입니다.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변의 압력에 떠밀려, 재수가 싫어서, 취업률이 높다는 이유로, 집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서,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민재나 수진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진로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대학 학과의 딱지는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그 나이에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그런 점에서 합격 소식을 들은 수진이 엄마를 껴안고 펑펑 우는 그 복잡한 심경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어른들에게 "인생이 걸린 일이니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죠. 하지만 아무 정보도 없이, 수험 준비 말고는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본 경험도 없이, 어떻게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42 문제는 20대의 몇년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천천히 진로를 선택하게 될 경우 부딪힐 수 있는 취업의 장벽입니다. 미국에서 연령에 따른 차별은 대개 노인들에 대한 취업기회의 제한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도 30세 전후로 취업연령을 제한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미국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30세가 넘으면 그 나이 되도록 무엇을 했든 분명히 거기서 얻은 경험과 지식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오겠다는 걸 왜 막느냐는 것이지요. 취업연령 제한을 철폐하는 것은 멀리 보면 우리 청소년들을 살리는 아주 중요한 인권과제입니다.

45 성인들에게는 당연히 허용되는 많은 일들이 청소년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왜냐고 물으면 교육적 목적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육적 목적이 '전가의 보도'는 아닙니다. 규제하려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머리를 길러야 할 이유나 치마를 줄이고 싶은 이유를 학생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제한하는 사람이 그 이유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지, 제한 받는 사람에게 입증 부담이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무엇보다 청소년에게는 기본권이 없다는 심각한 오해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당연한 주체입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인들 모두 '청소년은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다'라고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공부 때문입니다.

46 청소년기에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여지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발과 복장을 규제한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욕구가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분출하게 놓아두면 1~2년 안에 지나갈 수 있는 것을 억지로 누르니까 사춘기가 30~40년 동안 계속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나왔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가장 잘 억제한 아이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청소년기에 머리 처박고 공부만 한 다음, 남은 평생을 그 억제된 에너지를 몰래 분출하는 데 씁니다. 교육정책도 모두 그런 사람들이 수립하고 법도 그런 사람들이 만듭니다. 재판도 경젱에서 이기고 또 이겨서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담당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으면서 행복하십니까? 중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학생들은 하늘도 땅도 모두 막힌 폐쇄공간에 갇힙니다.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에 가장 좁은 공간에서 억압만 경험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머리와 옷을 통한 개성 표현도 제한됩니다. 이건 그냥 죽으라는 겁니다. 그나마 학생들이 모두 죽지 않는 이유는 그 에너지가 지닌 독특한 복원능력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이런 억압 속에서도 치마를 줄이고, 방학 때면 염색과 파마를 하며 귀를 뚫습니다.

49 기존 씨스템에 대해 가장 강한 확신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의심 많은 사람

65 "그런데 동성애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프랑스어를 가르치듯 그냥 가르치면 되는 겁니까?" - 영화 <밀크>의 하비 밀크

밀크는 이에 덧붙여 자신은 지독한 이성애자 사회 속에서 이성애자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성애자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왜 이성애자가 되지 못했느냐고 질문합니다. 자신이야말로 성적 지향이 교육으로 만들어지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산 증거란 이야기입니다. 하비 밀크의 반문은 정곡을 찌르는 것입니다. 이성애자의 눈으로 볼 때 동성애, 특히 섹스를 통해 분명하게 밝혀지는 성정체성은 확실히 불편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생활 양식이 확산될까봐, 혹시 우리 아이가 그렇게 오염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성애자에 속하는 다수자들은 먼저 이렇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누가 돈을 준다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그럴 수가 있을까? 멋진 꽃미남, 이제는 전설이 된 히스 레저가 나를 유혹하면 나는 과연 바지를 벗을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은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저도 그럴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의 세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 합니다.

79 "저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은 느낄 필요가 없는 그런 혼란과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을 가지고 살게 했는지 저도 알고 싶다." - <천하장사 마돈나> 트렌스젠더 김비

201 20면 안팎의 짧은 소설을 통해, 작가 이청준은 지나치게 빠른 용서, 너무 쉬운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에 대한 강한 의문을 던졌습니다.

212 어떤 극심한 형벌도 피해자나 그 가족의 고통과 복수심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그 복수심을 충족시키는 도구일까요? 일정부분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도를 지나쳐서 개인처럼 이성을 잃기 시작하면 곤란합니다. 개인에게 보복을 맡겨두면 한두 배가 아니라 열 배, 스무 배의 복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동해보복의 딸리오법이 만들어졌고, 그 형벌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집행하라고 시민들은 국가에 역할을 위임했습니다. 시민들에게 형벌권을 위임받았다고 해서, 시민들이 연주하는 분노와 보복의 장단에 맞춰 국가가 무조건 춤을 춰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형벌은 오랜 세월 동안 어렵게 야만을 벗어나 합리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고문과 잔혹한 형벌을 제거한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이 진보해왔다는 산 증거이기도 합니다. 국가는 개인과 달리 이런 문명의 진보 수준에 발맞추어 가장 합리적인 형벌을 찾아내 집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즉 제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 상대방을 쳐죽이기를 바랄 수 있고, 그게 잘못은 아니지만, 국가에는 그런 보복감정을 넘어선 합리적이고 공정한 형벌을 입법하고 재판을 거쳐 집행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적절한 처벌을 찾아보자는 논의 중에 "네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따위의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으로 논점을 흐리는 것은 좋은 토론 자세가 아닙니다.

224 기묘한 방법으로 병역을 피한 '신의 아들'들과는 달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시간을 벌거나 자기 한몸 편하자고 병역을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병역의무 불이행이라는 원인은 똑같지만, 그 결과로 병역거부자들이 얻는 것은 유학도 미국 시민권도 아닌, 끔찍한 교도소 생활과 전과자의 낙인입니다. 지금 그들이 원하는 것도 병역면제가 아니라, "아무리 심한 일, 아무리 긴 기간이라도 상관없다."는 대체복무의 인정입니다. 제대로 된 대체복무 제도가 도입된다면, 지금 국적포기자의 행렬에 선 사람들 중 한명이라도 이를 감수하려 할까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희생한 '어제의 용사들'이 미워해야 할 대상이 혹시 존재한다면, 그들은 적대적 공존 속에서 분단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 폭력적 군사문화에 안주해온 사람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역을 피해간 위선적 지도자들이지, 그 희생양으로 우리 못지 않게 고통받아 온 병역거부자들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을 열고 그 소수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통한 삶의 길을 열어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야말로 '어제의 용사들'이 피땀흘려 지켜온 자유, 평등, 평화의 가장 값진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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