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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들

<스포트라이트> : 옳은 편

by 새 타작기 2016. 2. 21.
'옳은 편'에 선 언론사를 그린 영화. 난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옳지 않은 편'에 선 종교. 종교가 병들어 가는 시대에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는 무엇인지. 옳은 편에 서는 것이겠지.
 

*


1. 가해자는 피해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결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가난한 집의 아이였던 Phil은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교회가 좋았고, 신부님이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Phil이 성추행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에게 성추행을 한 사람이 바로 그토록 좋아했던 신부였기 때문이다. Joe 역시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남자에게 범죄를 순순히 허용했던 건, Joe가 '게이여도 괜찮다는 말'을 처음 들은 건 신부로부터였기 때문이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사랑해주고,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좋은'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남자아이였던 이유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남자애들은 수치스러운 걸 숨기기 때문입니다"). 신고할 수 없는 그들의 결정적인 특성을 파악하고 이용한 것이다.

2. 피해자 혹은 주변 사람이 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주저했던 이유.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신을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신부에 대한 깊은 신뢰와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던 피해자에게, 신부는 곧 신이었고, 신부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곧 신에 대한 거부였다("어떻게 신의 부탁을 거절하겠어요?", "이건 성적 학대를 넘어 영적 학대"). 짧은 인터뷰 속 경찰의 진술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신부에게 수갑을 채우는 것은 모두가 꺼려했어요"). 

3.  결코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소수 드립은 이제 그만. 가해자는 이것을 소수의 문제로 치부하고("교회는 소수의 일탈로 비치길 원하지만, 문제가 훨씬 커요",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째 버릴 순 없어요"), 피해자와 지역 사회는 이를 마을 전체가 나서서 교회 전체에 대응하여 해결해야 할 차원의 문제로 여긴다("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라는 체계를 파헤치자는 거죠").

4. 교회가 그동안 옳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그것이 옳은 의도로부터의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 게다가 그들이 한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도 의문), 그 가운데 나쁜 일을 묻어가려는 건 무책임한 것. 잘한 건 잘한 거고 못한 건 못한 거다("상대는 교회야. 그들은 좋은 일을 많이 했잖아. 파티 좀 즐겨").

5. 일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지체된 데에는 언론사의 책임도 있다. 피해자인 Phil도, 변호사도 이미 5년 전에 언론사 측에 신부들의 범죄에 대한 자료를 보냈지만, 언론사는 이를 덮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언론사는 지난 과오에 대해 반성을 했고("우린 뭐가 잘나서?"-Peter가 쓰레기들을 변호할 때 우리도 손 놓고 문제를 덮었다며 Robby가 하는 반성의 말), 그동안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6. 정작 가해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차적인 죄가 양산되는지. 가해자인 신부가 과거에 대한 진술을 별 가책없이 하는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아이들을 만진 건 사실이지만, 그걸 즐긴 적은 없어요. 그게 중요한 거죠"). 이런 가해자의 태도에 피해자는 또 한번의 상처를 입는다("피해자들에게 최선은 사과와 약간의 돈이에요").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해달라는 건 사치에 가까울 지경이다.

7. 가해자의 범죄엔 역시 '과거 피해 경험'이 있었다(가해자 역시 소년 사제 시절 수도원 내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동정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8. 주변 사람의 범죄 피해에 눈 감아선 안되는 이유. 언제든지 내가 그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도 작은 차이 혹은 운("Talbot에게 지목이 안된 건, 당신과 나, 운이 좋았던 거죠", "팀장이었을 수도 있고, 나였을 수도 있고, 누가 당했을지 모른다구요")

9. Sacha와 Michael의 대화가 어쩌면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엔 그토록 가고 싶던 교회가 이제는 갈 수 없을만큼 더러워진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요새 성당에 안 가. 힘들더라고. 성당에 가면 자꾸 Joe가 생각이 나고, 화가 나"-Sacha, "어릴 때 성당 다니는 걸 정말 좋아했어. 그곳에 언젠가 돌아갈 생각을 했는데, 그 편지들을 읽으니 안에서 뭔가가 깨져버렸어"-Michael).

10. 신문이 발행되는 장면만으로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를 주었고, 사임한 추기경이 유력한 성당에 재발령 받았다는 내용의 엔딩크레딧만으로 씁쓸함을 주었다.

11. 과거의 지구 반대편에서의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일임이 실감난 게, 영화 속 사건 취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2주 전에' 성추행 피해를 입은 두 소녀가 등장한다.

12. 곳곳에 기자들의 직업 윤리가 엿보인다. 필요한 부분은 항상 인터뷰이에게 동의를 구하며("괜찮으시다면 메모해도 될까요?"), 동의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책을 덮고, 펜을 집어 넣는다(녹음기는 당연히 끄고). 'OFF THE RECORD'를 배신하지도 않고(잘은 모르겠으나), 시간에 쫒겨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기사를 내지도 않는다. 피해자에 대한 기자의 배려도 볼 수 있는데, 게이를 취재하기 위해 '여기자'가 방문하고(어쩌면 이런 게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가 남자 앞에서 성적 수치심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진술을 망설이는 피해자의 말에 깊은 호기심을 드러내고("이 얘길 꼭 들어야겠어요?"라는 피해자의 말에 "네, 꼭 듣고 싶어요"), 피해자의 언어 표현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추행 정도로 순화하면 안 돼요. 여기선 용어가 정말 중요해요").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 기자의 표정에선 진심어린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대사는 기억과 서툰 필기에 의존한 것. 정확하지 않음.



ㅡ160221, 광화문 시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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