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ΟΟ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ΟΟ는 현대사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의 주범이다. 1인당 ΟΟ소비량이 많은 지역일수록 거주자의 월평균소득이 감소한다. 어린 시절 ΟΟ소비량과 명문대 진학률은 반비례한다. ΟΟ이 악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ΟΟ은 죄와 타락의 이미지. ΟΟ을 가진 것만으로도 잠재적인 범죄자. ΟΟ은 반사회성과 폭력성을 부추길 게 확실하다. 만약 ΟΟ만 없어진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도 다 사라질 거다. 스스로 ΟΟ을 만드는 것은 반정부적이고 위험한 발상.>
ΟΟ가 술이든 담배든, 야구든 야동이든, 라면이든 복면이든, 무엇이 됐든, 이 세상에서 그것을 자유롭게 누릴 권리는 점차 없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ΟΟ이 영원히 사라지겠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음주운전이 사람을 죽게 해도, 늦은 밤 퇴근길 포장마차의 한잔 술은 있어야 하고, 간접 흡연이 아무리 해악이라 해도, 일하느라 하루종일 굽어 있던 허리를 펴며 입에 무는 한 가치 담배도 있어야 한다. 불법 스포츠 도박이 성행해도, 누군가는 소파에 몸을 누이고 야구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성범죄자들이 야동을 즐겨본다 해도, 누군가는 숨죽여라도 야동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테러리스트가 복면을 즐겨 쓴다고 해서, 누군가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복면을 쓰고 활보해도 국가는 그를 진압해서는 안 되고, 라면이 사람을 병들게 할 지라도, 라면 먹을 권리를 국가가 박탈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특히 라면 한 그릇이면, 누군가는 극한의 추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으니까.
*
"예전에 김기수 씨가 여기서 장사를 할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끼 라면만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왜 그랬던 건지, 혹시 짐작 가는 이유 같은 건 없으세요?" "이유? 아니,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라면가게를 하니까 하루 세끼 라면만 먹은 거지. 난 지금도 하루 세끼 만두만 먹는다고." 126쪽
라면동호회가 본부가 경찰의 급습을 받아 와해됐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어쨌든 거기서 경찰은 몇 개의 솥과 식용유 두 통, 그리고 밀가루 서너 포대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라면이 사라졌느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126쪽
ㅡ「라면의 황제」, 『2014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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