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곁에 있어도 아버지를 찾아 다닌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부재를 느낀다. 심리적 부재?) 아무 이유 없이 폭 안기고 싶은 아버지. 그런 포근한 집 같은 아버지를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린 요즘 세대, 아니, 나.
어려서부터 그랬다. 아버지가 날 미워해서가 아니라, 괜히 아버지가 어려웠고 피하고 싶었다. 둘만의 시간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고 둘 사이에 흐르는 건 냉기 뿐이었다. 그래서 중간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싫은 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폭력을 휘두르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못지 않은 일들이 허다했다. 온갖 집기가 부숴지고, 참을 수 없는 고성이 오갈 때, 난 문을 닫고 방 한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정신 없는 행동들의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식구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내 머리로는.
아버지도 없는 구석이라도 억지로 찾아 숨고 싶어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것들에 대해 어떤 보상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자라왔고, 어느새 보니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던 것일텐데.
아버지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이 집을 어디서부터 손봐야할지, 설령 안다해도 이제는 나서서 돌이키기엔 왠지 늦어버렸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바랐을 것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난 멋지게 살겠노라고. 하지만 그 아버지를 똑같이 닮아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어쩌면 아버지는 그 어떤 바람도 가질 수 없이, 그냥,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누구는 여전히 아버지를 미워하고, 누구는 이제는 아버지를 가슴 속에 묻고, 누구는 그래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 집이 무너진 건 다 아버지 책임이라고 모든 걸 아버지에게 돌리던 이 치기 어린 자식들이 이제는 그 책임을 조금씩이라도 함께 짊어지기로, 그렇게 애쓰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집>, 박정희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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