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무슨, '까라면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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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짧게 경험한 바 정작 군대에는 '까라면까'가 없었다. 까야할지 말아야할지 내가 고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수직구조 속에서도 꽤 큰 자율이 있었달까.
소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 권한이 잘 보장되었다. 병력관리에서든 교육훈련이나 작전수행에서든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랬다. 소대장이 소대원들 훈시하는데 중대장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상담도 내 계획에 맞춰 하고, 상담 내용은 비밀이 보장되었으며 중대장에게는 특이사항만 보고하면 그만였다. 훈련이나 작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대 작계만 잘 익힌다면 그 안에서 얼마든지 소대 지휘가 가능했다. 중대장이 와서 왜 여기에 땅을 파냐, 사격구역이 이게 뭐냐 간섭한 적이 없다. 중대장은 자기의 계획을 잘 설명해줄 뿐이었다.
소대전투력측정같은 큰 거 준비할 때는 딴 거 하지 말고 거기에 집중하라며 무려 한 달의 집중훈련 시간을 보장받았다. 모든 작업에서 열외하고 경계근무나 오대기에서도 상당히 배려를 받으며 훈련할 수 있었다. 역시 중대장이 감놔라배놔라하는 일은 없었다. 소대장이 교범보고 밤늦게 연구하여 소대원들 가르치고, 소대장 중심으로 훈련 체크리스트 짜서 그에 맞게 물자준비하고 반복훈련했다. 내 선에서 해결안되는 것들만 중대장에게 보고하면 사람 더 붙여주고 물건 더 사다주는 식이었다. 훈련하는 맛이 있었다. 내가 계획을 세우고 상당한 자율 속에서 내가 실행한다는 게 참 중요하다. 그래야 재미가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명절연휴까지 반납한 채 훈련에 몰두했다. 즐거웠다. 그렇게 한 달을 준비하고 들어간 실전에서 우리 소대는 천 점 만점에 팔백여 점을 받아 사단 내 삼십여 개 소대 가운데 월등한 격차를 보이며 일등을 차지했다. 훈련 다녀와 복귀신고하는데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 중대장이 수고했다 한마디 하는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중대장이라고 왜 간섭하고 싶지 않았겠나. 아는 것이라고 군사학교에서 배워온 게 전부인 초짜소대장에게 '불안하지만' 맡기고 묵묵히 기다려주며 뒤에서 지원해준다고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게 믿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사나흘에 한 번씩 돌아오던 당직근무 자체가 그렇다. 새파란 쏘위 중위에게 중대장에 버금가는 권한을 주고 중대전병력을 맡기고 퇴근한다라. 연대장 사단장이 밤에 들이닥칠 때 이놈이 브리핑은 똑바로 할까, 이런 걱정 없었을까. 그때는 힘들기만 했던 기억인데, 지나고 보니 그때의 고마운 마음이 느껴진다.
군대도 꽤 살만했고 일할만 했다. 중대장과 소대원, 동료 소대장을 잘 만난 행운들이 겹쳐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긴 한데, 그래도 일하기 좋았다. 십 년 가까이 된 기억을 새삼스레 꺼내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옛날얘기 특히 군대 얘기하면 꼰대되는 건 순식간인 거 아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요즘 특히 옛날 군 시절 생각이 난다. 사회랍시고 평등 공평 공동체를 주장하면서 군대보다 훨씬 수직적인 가운데 늘 논리 부족한 궤변을 마주해야할 때마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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