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뱉고 싼 추저븐(더러운) 것들 한 달을 닦아도 느그 놈들 하루 껌값도 못 번다니. 씨벌, 매시꼽다(매스껍다).
- 『웅크린 말들』, 이문영, 후마니타스 (2017)
2013년쯤이었나. 돈 좀 벌어야겠다 싶어 한 대학병원에서 기능원으로 일 년쯤 일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공부한답시고 고정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어깨도 축축 처질 때였어서 뭐라도 좀 해보자는 마음이 컸고, 새벽같이 출근해서 낮이면 퇴근할 수 있어 오후부터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또 컸다. 가 보니 채용구조는 호텔이든 병원이든 똑같았다. 중개업소를 통해 들어가는 방법이 유일했다. 그 중간다리는 한 달에 월급을 오십 만원씩 떼 처먹는 곳이었는데 그렇게 지랄같아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오래 하고 싶어도 일 년 십일 개월밖에 일 못하는 비정규직 봉급을 갉아먹냐. 더러워서 일 안한다,고 되뇌이며 정말 열심히 출근했다.
배치받아 처음 간 곳은 중앙멸균실. 병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시설 전반을 둘러보는데 무척 넓었고 복잡했고 쾌적했다. 공장의 생산라인과 비슷한 모양으로 두 줄의 멸균 공정이 있었고 그 줄 양 옆으로 푸른 옷을 입은 기능원들이 줄지어 서서 일을 하고 있었다. 병원 하면 의사와 간호사밖에 몰랐는데, 기능원들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수많은 기능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수간호사를 포함한 소수의 간호사들이 감독하고 있었고, 그들의 지휘에 따르는 기능원들이 대다수였다. 점차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기능원들 중 정직원이 있고 나같은 계약직이 있었다. 다 계약직이 아니었구나. 정직인지 계약직인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랴 내 일만 똑바로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다 구분이 되었다. 정직의 유니폼은 색이 바랜 푸른색, 계약직의 유니폼은 아주 선명한 푸른색이었다. 마치 군대에서 물빠진 전투복을 입고 있는 병장의 모습과 비슷하달까. 정직과 계약직은 우선 급여부터가 달랐다. 나는 오십 만원 뗀 쥐꼬리라면 정직은 소꼬리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가장 대장 간호사는 월 천쯤 된다고 하니 이건 뭐 말할 것도 없고. 일은 정직이나 계약직이나 똑같이 하는데 돈은 달랐다. 명절 선물도 달랐다. 정직들이 상여금 몇 십 프로 두둑히 받아갈 때 나는 돌솥 뚝배기 하나 겨우 받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 그게 어디냐 하고 넙죽 받을 때, 미안했는지 식권 열 장 몰래 챙겨준 정직 아줌마가 있었다. 고마웠다.
멸균실 직원만 있는 줄 알았던 거기에 청소 기능원도 있다는 건 한참 후에 깨달았다. 똑같이 색바랜 옷 입고 늘 같은 공간에 있어서 몰랐는데, 우리와 (우리? 정직과 계약직이 우리로 묶이네) 은근히 쓰는 공간도 다르고 겹치는 시간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청소하시는 아줌마가 오시면 다들 인사를 안 하고 약간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밥 먹을 때도 같이 가자 하는 사람 한 명 없어 하루는 같이 가시죠 여쭈어보니, 이따가 드신다면서 먼저 가라고 손사래치시고는 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혼자 다닐 수 있는 거리도 넓어지며 처음 가보게 되는 구역도 점차 생겨났다. 선배가 시켜 청소도구를 가지러 청소도구함에 갔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널부러져있던 도구들 한편으로 바닥에 박스가 깔려 있었고, 거기에 그 청소 아줌마 짐이 놓여 있었다. 마주친 아줌마가 그러길 여기가 내 공간이라고, 도시락 싸와서 여기서 밥도 먹고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 짬 나면 여기 잠깐 누워있고 한다고.
거기 멸균실 분위기가 참, 인사 해도 받는둥 마는둥 뭔가 도도하고 어색하고 할 때, 그 아줌마가 인사를 참 잘 받아주고 잘 해줬었다. 돈도 잘 못 버시는데 멸균실 기능원들 경조사 있으면 다 다니시는 것 같았다. 정이 있으신 거지. 그 때를 떠올려보면, 똑같이 일하고 돈도 적게 받았는데 왜 눈치까지 받았어야 했나, 그게 아쉽다. 돈 조금 주려면, 쉬는 시간이라도 충분히 주고, 쉴 공간이라도 주고(아줌마는 청소도구보관함 나는 샤워실 앞 나무의자) 했으면 좋으련만.
화장실에 붙은 청소 도구 창고에 쪼그려 앉았다. 그들에겐 쉬는 시간이 따로 없었고, 쉬는 시간이 있어도 쉬는 공간이 따로 없었고, 쉬는 공간이 있어도 쉬는 모습은 따로 없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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