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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

깔끔, 옹졸

by 새 타작기 2016. 2. 25.
서울 가는 길. 커피 한잔 사서 손에 들고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 수없이 여닫았을 유리문을 지나면서 문득 이상한 점 발견. 문을 내 몸 하나 겨우 지날만큼 열어서 몸만 쏙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옹졸해졌구나.

요새 손잡이를 통 잡지 않는다. 사람들의 지문이 뜨뜻하게 쌓인 곳에 내 손을 겹치는 느낌이 싫다. 그래서 손잡이 말고, 유리 부분(특히 지문이 묻어 있지 않은), 혹은 일부러 힘을 들여 손을 뻗어야만 하는 높은 곳이나 가장자리를 밀거나 당겨 문을 여닫는다.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그 위의 쇠봉을 잡는다거나, 머그로 물을 마실 때 사람들의 입이 닿지 않은 손잡이 부분을 이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랄까. 이걸 나는 그냥 깔끔하다고 표현한 것. (다른 표현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옹졸하다고 생각한 건, 내가 전엔 이러지 않았으니까. 그땐 뒤에도 눈이 있었다. 뒤통수가 시큰하면 영락없이 뒤에 사람이 따라오고 있는 것. 그러면 문을 활짝 열어 내 몸이 지나가고도 팔은 문을 잡고 있는, 몸이 뒤틀리도록 얼굴도 못 본 행인을 배려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걸 안 했다. 내가 벌린 문틈으로 팔짱 끼고 지나는 사람들이 고까웠나 보다. 필요 이상의 무심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옹졸함을 선택해온 게 아닌가, 일단 그렇게 정리.

어디 문을 열 때만 그런가. 내가 요새 하는 모든 행동이 그런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남들이 함부로 끼어들지 못할만큼 마음이 야박하게 열리고 냉정하게 닫힌다. 참 여지없다. 옹졸하단 말 듣기 싫어서 난 이걸 깔끔하다고 표현한다.


ㅡ1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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