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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들/시

「특별한 일」 : 최선

by 새 타작기 2015. 12. 17.

한때 기타를 하도 쳐서 지금도 내 손끝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다. 스타크래프트에 미쳤을 때는 쉴새없는 마우스질에 오른 손목의 안쪽이 딱딱해졌었고, 한창 공부를 많이 할 때는 오른손 중지 손톱 밑이 굳어져 감각이 없었다(지금은?). 아버지의 팔꿈치 안쪽을 만져보면 역시 딱딱하다. 거기가 어째 딱딱한가 여쭤보니, 낮은 포복 자세로 기계 밑에 엎드려 허구한 날 수리를 하다보면 그렇게 된다신다. 그동안 다친 채 집에 오시던 장면을 떠올려보면, 굳은살은 뭐 애교 수준이다. 기름독 때문인가 나뭇껍질처럼 변해버린 양손은 남자의 훈장 같은 거라고 해도, 화상 입고, 감전 되고, 여기저기 찢기고, 손가락 살점이 떨어져 비틀비틀 집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는 자식의 마음은 한없이 죄송스럽다.


도마뱀은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꼬리를 자르고, 포식자가 꼬리에 시선을 뺏긴 사이, 그 자리에서 도망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는 것, 최선은 그런거라고 시인은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무엇을 위해 자기 몸을 그렇게 잘라내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의 몸도 모르긴 몰라도 여러번 잘려나갔다. 그렇다고 도마뱀처럼 다시 자라나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했다. 고통을 참아내면서 몸을 잘라낸 결과, 아버지에게, 아니 우리 집에, 특별한 일(소위 '대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단지 오늘 하루 생존을 위해, 식솔들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다 함께 다음날 아침을 맞기 위해 그랬던 거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가끔 아버지는 외롭다고 투정부릴 수 있었던 거고. 언젠가 아버지 생일날, 식구들이 몰라준다고 버럭 화냈던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반면에 나는, 내일 아침을 위해 기꺼이 내 꼬리를 내어줄 만한 용기가 있는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 보니, 난 아직 비빌 언덕이 있다는 핑계로 어리광부리고 있는가 보다. 그 언덕에서 박차고 나오기 전에는, 감히 외롭다는 말을 아무때나 쓰면 안되겠어.



***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ㅡ「특별한 일」,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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