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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들/오늘의

입영식

by 새 타작기 2015. 10. 27.

1. 오랜만에 군 부대를 찾았다.


2. 풀이 짧고 길마다 건물마다 각이 진 곳. 하늘은 파란데 괜히 황량하다. 파르라니 짧은 머리들 속에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 "형님!"


3. 세 사람 사이의 공기가 어색하다. 아들내미 군대 간다고 따로 사는 부부가 한데 모였다. 서로 간에 무심한 반말과 조심스런 존댓말이 오간다. 미묘한 분위기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드님 자랑 뿐. 아드님이 녹차 한 잔을 건넨다. 이 녹차 한 잔, '이미 거쳐온 사람들'에게는 따뜻하지만, '이제 헤쳐갈 사람들'에게는 씁쓸한 것.


4. 친구들 군대 갈 때마다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배웅했을 텐데, 막상 본인이 갈 때 되니 아무도 남지 않았다? 소외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5. 문자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같이 있는 게' 낫다. 잔치집은 못 가도 초상집은  다녔다. 군대 가는 게 장례처럼 슬픈 일은 아니지만, 위로나 격려가 필요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면, 오늘이 바로 그 결정적 시기. 오늘이 지나면 빈 가슴은 빈 채로 흘러간다. 오늘이 아니면 안되기에, 저분들도 어렵게 마주하셨을 테고.


6. 오늘이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오래 대비했더라도, 막상 떨어지는 장면은 한 순간이다. 장병들 모이라는 안내 방송에 짧은 포옹 한번 나누고는, 있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양쪽을 나누는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간다.


7. 군악대의 연주가 흐른다. 내 눈에는 별로 공들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입영식이, 어미 아비에게는 신기하고, 무섭고, 가슴떨리는, 또 멈추고 싶어지는 절대적인 순서.


8. 식이 끝나고 이제는 나가라는 말에 힘없이 나가는 가족들. 그 누구보다 더 편지를 많이 써 우리 아들 외롭지 않게 해주겠노라 처연하게 다짐하는 어미.


9. 훈련은 언제부터 하냐, 거기 수건은 있냐. 당장 시작될 훈련을 걱정하는 어미에게, 그나마 춥지 않아 다행이라는 설익은 위로를 던지면서도, 정작 나는 오늘 스산한 가을 바람에 외투를 꺼내 입었다.


10. 육 년 전 초봄. 아들 성화에 멀리 나오지도 못하고 집 앞에서 겨우 눈물로 손 흔들던 엄마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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